영랑시문학상 조용미 “시는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5일 14시 48분


조용미 시인.
조용미 시인.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색에 깃든 신비함을 볼 수 있다면 더 깊은 어둠을 통과할 수 있다.”

조용미 시인(63)의 시 ‘물야저수지’ 속 한 구절이다. 시인은 숲속 어딘가를 통과하며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를 띤 무수한 초록을 찾아낸다. 그에게 시란 한 덩어리로 보이는 각각의 존재에 개별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행위다.

‘물야저수지’ 등이 실린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2024년·문학과지성사)이 동아일보사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2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감태준 이근모 장석남 시인은 최종 후보작 5개 중 조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조 시인은 24일 동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제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색과 음, 즉 색채와 소리”라며 “시는 이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시는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잔혹한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조 시인은 여덟 번째 시집인 이번 시집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것들만이 담아낼 수 있는 생의 정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빛과 그림자의 교차 속에서 삶을 성찰한다. 살구나무의 꽃이 진 후에도 그림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거나,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빛에서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시적 시선이 돋보인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그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이번 시집의 여러 갈래 의미 층 중에서도 ‘색’에 대한 천착은 이채로운데 ‘분홍의 경첩’에서부터 ‘초록의 어두운 부분’, ‘노란 색에 대한 실감’, ‘검은 맛’, ‘붉은 대나무’ 등으로 이어지는 ‘색채담’은 영랑의 ‘모란’ 밭의 여백을 연상하며 읽어도 좋았다”며 “자꾸 어두워지려는 마음에 부지런히 색을 공급해보려는 심사 같다”고 밝혔다. 이어 “영랑시문학상 제정 취지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문학 정신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역량 있는 시인’이라는 차원에 초점을 두고 전원의 동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조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시를 쓰는 참뜻은 오로지 시에만 있지 않고, 세상을 잊고자 함도 아니고,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는 일에 있지 않을까 싶다”며 “생에 더욱 투철해지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화로워서 아름다워질 때까지, 혹은 불화가 이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 시인은 경상북도 고령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길문학을 통해 ‘청어는 가시가 많아’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제16회 김달진문학상을 시작으로, 2012년 김준성문학상 시 부문, 2020년 제20회 고산문학대상 시 부문, 2021년 제24회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당신의 아름다움’,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등을 썼다.

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오후 3시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

#조용미#영랑시문학상#물야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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