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녹음 후 긴 시간 잠수탔다…애정가고 아픈 앨범”

  • 뉴시스
  • 입력 2023년 9월 12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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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가는 동시에 가슴 아픈 앨범이에요.”

12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지난 6월 통영에서 이뤄진 녹음에 대해 언급하며 감정이 격해져 눈시울을 살짝 붉히기도 했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의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그는 유니버설 산하 레이블 데카를 통해 12일 새 앨범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을 발매했다. 3년만의 새 스튜디오 앨범이다.

하지만 녹음 당시 선우예권은 심각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녹음에 앞서 미뤄뒀던 예비군 훈련을 한꺼번에 몰아 받았고, 부비동염·편도선염·고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저 스스로 관리를 못했던 거잖아요.”

정상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선우예권은 녹음실이 있는 경남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연습을 시작했다. “아픈 상황은 잘 견디는 편이고, 극한에 몰렸을 때 특별함이 나오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정신력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틀간의 녹음이 끝나자마자 아침 비행기로 뉴욕에 가야 하는 빠듯한 상황이기도 했죠.”

하지만 녹음 첫날에는 몸이 너무 안 좋아 중간에 병원에 가 수액을 맞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선우예권은 사력을 다해 녹음을 마쳤고,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밤새 서울로 이동해 아침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선우예권은 “녹음 직후 빨리 듣고 피드백을 했어야 했는데 꽤 긴 시간 동안 잠수를 타버렸다”며 “회사에서 제가 죽은 줄 알고 베를린에 올까 고민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9월 앨범발매와 리사이틀 투어가 예정돼 있어 빨리빨리 모든 것을 해냈어야 했는데, 앨범을 다시 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재료들이 잘 융합돼 지금 들어보면 만족도 있는 앨범입니다.”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이라는 앨범 제목도 그렇게 탄생했다. “어두운 밤바다의 잔잔한 물결에 반영된 달빛을 좋아해요. 통영에서 녹음을 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밤바다와 꽉 찬 달을 봤습니다. 그때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소망했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 앨범을 통해 거울을 바라보듯 제 본연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었죠.”

선우예권은 이번 앨범 속에 당시의 심정과 앨범의 의미를 자필로 꾹꾹 눌러써 담았다. “삶을 살며 사람이 모든 일을 예측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앨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더 애정이 가요. 굉장히 특별한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은 선우예권에게 반 클라이번 우승을 안겨준 작곡가이자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레퍼토리로 구성됐다. 선우예권은 이번 앨범에 가장 라흐마니노프다운 작품을 담고자 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단 두 개의 변주곡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42’,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2’부터 로맨틱한 선율로 널리 사랑받는 ‘첼로 소나타 G단조, Op. 19 - 3악장: 안단테’,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모스크바의 종’이라는 부제로 유명한 ‘전주곡, Op. 3 중 2번’ 등 6개의 작품을 녹음했다.

이중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선우예권에게 아주 특별한 곡이다. “저는 영재가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을 시작했고, 천천히 가는 아이였죠. 15살 때 유학을 떠났는데 굉장한 고충을 겪었어요.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 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 몰랐죠. 심지어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끼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다 17~18살쯤 코렐리 연주곡을 만났어요. 지금도 상상하면 세이무어 립킨 선생님의 연주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아요. 라흐마니노프는 감정을 들끓게 만들죠.”

선우예권은 앨범 발매를 기념해 11차례에 걸쳐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갖는다. 2021년 후 2년만의 전국 투어다. 투어는 오는 23일 화성 반석아트홀을 시작으로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부산문화회관, 김해문화의전당, 대전예술의전당, 성남아트리움, 함안문화예술회관, 익산예술의전당, 안양 평촌아트홀을 거쳐 10월20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마무리된다. 서울 공연은 오는 10월18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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