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속 사랑, 우리사회에 가장 메마른 감정 짚어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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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셀로’ 연출가 박정희
“가죽재킷입고 춤추는 ‘돈주앙’처럼
연극성 가미된 오페라 만들고 파”

박정희 연출가는 “인공지능(AI)에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진 오늘날, 풍부한 감정을 가진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존재임을 ‘오셀로’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정희 연출가는 “인공지능(AI)에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진 오늘날, 풍부한 감정을 가진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존재임을 ‘오셀로’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풍경을 잡아내려 노력해요. ‘오셀로’에는 울분과 좌절, 용서와 참회, 그 밑에 결국 사랑이 있죠. 사랑을 잊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입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다음 달 12일 개막하는 연극 ‘오셀로’ 연출을 맡은 박정희 극단 풍경 대표(65)의 말이다. 예술의전당에서 박 연출가를 25일 만나 ‘오셀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오셀로’는 ‘햄릿’, ‘맥베스’, ‘리어왕’ 등과 함께 4대 비극으로 꼽힌다. 전쟁 영웅인 장군 오셀로와 기수장 이아고가 질투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을 치밀한 심리 묘사와 함께 그려냈다. 이아고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자신을 제치고 오셀로가 다른 사람을 부사관에 임명한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결국 이아고는 오셀로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에게 의심을 품고 파멸에 이르도록 계략을 짠다. 오셀로 역은 박호산 유태웅, 이아고 역은 손상규가 각각 맡는다.

2001년 ‘하녀들’로 데뷔한 박 연출가는 주로 동시대 희곡을 실험적 연출로 풀어내 왔다. 그가 고전을 연출하는 건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룬 ‘이오카스테’(2010년), 도스토옙스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백치’(2018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박 연출가는 “최근 드라마들이 복수와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오셀로는 질투와 분노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이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가진 삶의 궤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죠. 이런 ‘오셀로’ 속 사랑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메마른 감정이 무엇인지를 짚어냅니다.”

박 연출가는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정평이 났지만 이번에는 각색을 최소화했다. 다만 420년 전 탄생한 작품이 오늘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도록 캐릭터와 대본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그는 “아버지 대신 오셀로와의 사랑을 택한 데스데모나는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여성으로 해석했다”며 “이를 연기하는 배우 이설 씨는 도발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인상에 매료돼 적극 추천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의 문어를 고어로, 고어를 다시 현대어로 전부 살려내느라 수정 대본만 7번째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합을 맞춘 배우, 창작진과 계속 연을 이어가며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2021년 연극 ‘오일’로 만난 소리꾼 이자람이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 역으로 출연한다. 2010년대부터 호흡을 맞춰온 여신동 무대미술가, 장영규 음악감독과도 다시 만났다. 박 연출가는 “서로에게 색다른 영감을 줄 수 있는 ‘창의적 만남’은 반복될 때 더 빛을 발한다”면서 “‘불안’을 무대로 표현하자고 했을 때 여신동 씨가 성채도 호텔도 아닌 지하 벙커를 가져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웃었다.

박 연출가는 오페라 연출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연기나 형식이 비교적 딱딱한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가죽 재킷을 입고 춤추는 ‘돈주앙’처럼 연극성이 가미된 재밌는 오페라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6월 4일까지, 4만∼8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연극#오셀로#연출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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