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밤하늘 불꽃놀이 같아요”…‘서른살 걸그룹’ 그녀가 품은 세상 [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1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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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넘어지고 쓰러져도 꺾이지 않는 청년’ 진도진 씨(하)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걸그룹 ‘페리블루’의 진도진 씨는 온라인 패션모델 등을 병행하며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쉽지 않은 역경을 겪었지만 여전히 밝은 미래를 꿈꾸는 건강한 청년이기도 하다. 진도진 씨 제공


*상편(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483243?sid=103)에서 계속

“지금의 내가 돌아가 그때에/ 너에게 해주고픈 말/ 너는 나아간 거야/ 길을 잃은 게 아니야… 포기한 게 아니야/ 잠시 숨을 쉰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진도진의 노래 ‘지금의 내가 그때에 너에게’에서)

한류의 바람은 어마무시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이돌 지망생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허나 보통 한 해에 데뷔하는 건 1000명 안팎에 그친다. 한 방송국 PD는 “산술적으로 그런 거고, 실제 얼굴을 알리는 건 100명도 안 된다. 0.01%의 확률보다 낮은 것”이라며 “데뷔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데뷔 뒤에도 그냥 사라지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걸그룹 ‘페리블루’ 진도진 씨(29)는 이미 2번 데뷔했으니, 겉으로 보자면 하늘의 별을 따냈던 셈이다. 하지만 그가 연습생과 걸그룹으로 겪은 우여곡절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기를 당한 거나 다름없던 그 시기를 떠올리며 도진 씨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 다신 안 울겠다고 다짐했는데…”라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끝내려했던 걸그룹 생활을 그는 왜 다시 시작하게 된 걸까.

-도진 씨도 힘들었겠지만, 부모님도 속상하셨겠네요.

“네, 항상 죄송하죠. 아빠 엄마는 언제나 딸자식을 믿어주는 분들이었어요. 당연히 연습생 때도 걱정은 하셨지만, 제가 가는 길을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해주셨죠. 그런데 돈까지 뺏겨가며 두 번째 그룹을 끝낸 뒤엔 ‘이젠 다른 일 찾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씀하셨어요. 저도 벌써 20대 후반인데 면목도 없었고요. 친구들은 이미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그냥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아는 분 소개로 운 좋게 한 회사에 취직하게 됐어요. 솔직히 절 받아줄 이유도 없는데 감사한 일이었죠.”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인디뮤직레이블 ‘미러볼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진도진 씨. 그는 자신의 아픈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어디 저만 힘든 세상인가요”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떤 직종이었나요.

“웹툰 관련 회사였는데, 직함은 막내 프로듀서였어요. 뭐 그냥 시키는 건 다 해야 하는 자리예요. 주로 작가들 만화 관리하는 업무였습니다. 초기엔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출근은 했는데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창피한 얘긴데, 그땐 e메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노래하고 춤추라 그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할 수 있는데, 그런 일들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남들에겐 쉬운 세상살이가 저에겐 너무 낯설고 힘겨웠어요.”

-드라마로도 나온 만화 ‘미생’의 장그래 같네요.

“네, 진짜 그랬어요. 아, 또 하나 닮은 게 있어요. 회사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프린터 하나 다룰 줄 모르는데도, 선배나 상사들이 구박하지 않고 차근차근 알려주셨죠. 회식 같은 거 하면 뭘 준비하면 좋을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저도 진짜 열심히 배웠어요. 집에 가서도 잠 줄여가며 공부하고요. 이젠 포토샵이나 영상편집 같은 것도 잘해요! 첫 월급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세금 떼고 180만 원 정도 됐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어요. 살면서 직접 벌어본 제일 큰 돈이었으니까요.”

-잘 다니던 직장은 왜 관둔 건가요.

“1년 넘게 회사 다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한국에서 사회생활하려면 대학 나와야 한다는 걸. 어찌 보면 이력서에 ‘한 줄 추가’인데도, 연봉과 대우 등 모든 게 달라지더군요. 물론 제 탓도 있으니 감수해야 하지만, 그보다 제 ‘전공’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평생 해온 게 연습생과 걸그룹이니 그걸 활용할 방법은 뭘까. 그때 백제예술대학 K-Pop과를 알게 됐어요. 이거다 싶었죠. 거기서 뭔가 나의 길을 찾아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직장 다니며 수능을 준비할 능력은 없고, 회사에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어요.”

-거기서 지금의 ‘페리블루’ 멤버들을 만난 거죠.

“처음 입학할 땐 걸그룹 할 생각은 1도 없었어요. 그 가시밭길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았죠. 그저 제 목표는 하나였어요. 무조건 장학금! 훨씬 어린 친구들이 동기라 미안하긴 했지만, 더는 부모님 도움 받기가 민망했거든요. 공부하고 알바해서 등록금 생활비 모두 제 손으로 마련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근데 과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드는 오디션을 본다는 거예요. 특히 플러스 점수까지 준다니, 저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기회였죠. 그게 페리블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걸그룹 ‘페리블루’의 도진 선아 혜영 슬 시호 현지(왼쪽부터). 도진 씨는 “열정이 넘치면서도 착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뭔지 아는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연습실에서 만난 페리블루 멤버들은 예의 바르면서도 활기가 넘쳐 마주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청년들이었다. 진도진 씨 제공


-그렇게 처음 내놓은 노래가 2021년 ‘Call My Name’이군요.

“교수님 등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지만, 저희 멤버가 하나하나 만들고 결정해가며 내놓은 곡이에요. 그걸 준비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이전 걸그룹 때는 무조건 정해준대로 시키는 것만 해야 했었잖아요. 근데 이번엔 우리 뜻대로, 우리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었죠. 물론 프로들이 만진 것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죠. 하지만 댄스 능력 있는 멤버가 안무 짜고, 보컬 좋은 친구가 노래를 다듬고. 의상부터 메이크업, 뮤직비디오까지 모든 걸 저희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1회성 프로젝트였는데 계속 팀을 유지하게 된 게 그런 이유인가요.

“맞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멤버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열정이 가득했어요. 실은 저를 포함해 대부분 올해 2월 졸업했거든요.(※도진 씨는 수석 졸업했다.) 근데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어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하고 하루라도 더 함께 하고 싶단 맘이었죠. 물론 저희도 의견이 안 맞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서로 속을 터놓고 얘기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가요. 팀을 이어가기로 한 것도 6명 모두 함께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소속사도 없는 ‘인디 걸그룹’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물론이죠. 학교에서 연습실도 빌려주고, 교수님들과 인디음악레이블 ‘미러볼뮤직’도 지원해주지만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죠. 그래서 멤버들 모두 알바나 직장을 다니며 번 돈을 모아서 꾸려가고 있어요. 저도 온라인 패션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감사하게도 제가 걸그룹 활동하며 알게 된 분들도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많지만, 좋은 분들도 정말 많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진 못하고 있습니다.

“어렵다는 건, 처음부터 각오했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도 주목받기가 쉽지 않는데 저희는 아무 것도 없는 ‘흙수저’니까요. 하지만 이쪽 일 하면서 세상일은 모른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모두에게 인정받던 능력 있는 연습생이 데뷔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재능도 인성도 별로라고 했던 친구가 빵 뜨는 것도 봤죠. 그렇다고 모든 걸 운에 걸겠단 얘기는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 가진 걸 쏟아 붓고 기회가 생기길 간절히 바라는 거죠. 그리고… 행여 실패하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진 말자는 게 페리블루의 모토입니다.”

인터뷰 뒤 진도진 씨에게 물어봤다. “이 기사를 읽은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나요.”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저희 음악을 들어봐주시면 좋겠단 말씀을 드리고 싶죠.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진심을 다했다면 우린 틀리지 않았다’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돌이란 도대체 뭘까요. 한때 관두려 했는데 다시 도전하고 있는 이유는.

“음…,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한테는 ‘불꽃놀이’ 같은 거예요. 저도 잘 알죠. 어쩌면 금방 사라진다는 거, 덧없다는 거. 하지만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린 걸요. 그 불꽃이 제 눈에 탁 하고 박힌 뒤엔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질 않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요. 닿을 수도 없고 손에 잡히진 않지만, 그냥 사랑에 빠져버린 거죠.”

-만약 친척동생이나 훗날 자식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하면요.

“(단숨에) 무조건 응원하고 적극 도와줄 거예요. 물론 진심인지, 정말 열심히 할 건지는 지켜봐야겠죠. 하지만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잖아요. 제 부모님이 절 믿어준 것처럼 저도 그들을 믿어주고 싶어요. 아, 딱 한 가지는 꼭 확인할 거예요. 계약서는 제가 한 줄 한 줄 밑줄 쳐 가며 다 읽어볼 겁니다. 아는 지인과 변호사 다 동원해서 꼼꼼히 체크할 거고요.”

-의외네요. 힘든 시간을 보내서 말릴 줄 알았거든요.

“사람이 꿈을 가진다는 건 나쁜 게 아니잖아요. 제가 아픔을 겪었다고 그들도 그럴 거란 법도 없고요. 제가 지금 페리블루를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실패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뭣보다 하고픈 일을 시도조차 못해본다면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모두가 성공할 순 없지만, 모두가 꿈꿀 수는 있는 거잖아요. 먼 훗날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요. 그게 제 인생, 제가 가는 길이니까요.”

아마도 도진 씨는 이런 답을 얻기까지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걸그룹을 탈퇴했을 당시, 그는 꽤 오랫동안 “길에서 ‘카니발’(연예인들이 업무용으로 주로 타는 차)만 마주쳐도 속이 울렁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 깊숙이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는 다시 ‘정면승부’를 벌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페리블루로 만난 진도진은 무척 빛나 보였다.

다만 ‘꼰대’스럽지만 어쭙잖게 전할 말이 있다. 아이돌 연습생을 ‘상품’이라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다. 그쪽 업계가 어떤 세계인진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어린 청년을 물건 취급하는 건 결코 옳지 않다. 그건 어떤 경우라도 수긍하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 물론 우리도 연예인들을 바라보며 자주 잊곤 한다. 그들 역시 하나의 고귀한 인격체라는 걸. 페리블루는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뮤지션이 되어주길. 폭죽으로 사그라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처럼.

[나의 옛날 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진도진 씨가 2번째로 고른 사진은 본인이 유치원 때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입니다. 눈을 감고 뭔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깜찍하면서도, 지금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 진도진의 진심이 느껴지네요. 진도진 씨 제공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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