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 마틴 탄생 110년…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DB’의 존재감[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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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도약 이끈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니셜, 1948년부터 현재까지 모델명에 남아있어
르망 24 경주서 종합우승한 ‘DBR1’ 모델… 애스턴 마틴 첫 SUV인 ‘DBX’서도 사용돼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름을 기리는 뜻인 ‘DB’를 담은 두 세대의 애스턴 마틴 본드카 3세대 DBS(왼쪽)와 1세대 DBS. 애스턴 마틴 제공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름을 기리는 뜻인 ‘DB’를 담은 두 세대의 애스턴 마틴 본드카 3세대 DBS(왼쪽)와 1세대 DBS. 애스턴 마틴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DB는 스포츠카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머리글자 중 하나다. 새해에 탄생 110년을 맞는 애스턴 마틴의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이니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애스턴 마틴의 모델 이름은 대부분 V나 DB로 시작했다. V로 시작하는 단어를 이름으로 쓴 것들은 현재 판매 중인 발할라나 발키리와 같은 특별한 소량 생산 모델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일반 모델의 컨버터블 버전에 붙는 볼란테나 고성능 모델을 상징하는 밴티지 같은 이름도 V로 시작한다.

1964년에 나온 DB5 밴티지에서 처음 등장했으니, V로 시작하는 이름의 역사도 제법 오래됐다. 그러나 DB로 시작하는 모델 이름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길다. 나아가 브랜드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나 중요성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크다. 애스턴 마틴이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 중 하나로 자동차 역사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인물을 기리는 이니셜이기 때문이다.

1913년에 설립한 애스턴 마틴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스포츠카와 모터스포츠에서 이름을 날리며 많은 팬을 낳았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어려움이 끊이지 않았고,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빈사상태였던 애스턴 마틴은 1947년에 새 주인을 맞아 제2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은 데이비드 브라운이었다.

기계부품과 농업용 트랙터 사업으로 성공한 브라운은 스포츠와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우연히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애스턴 마틴을 인수했다. 그는 평소 스포츠카 회사를 소유하고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고 싶었는데, 마침 애스턴 마틴이 개발하고 있던 스포츠카를 몰아보고는 세련된 주행 특성에서 성공할 조짐을 느껴 인수를 결정했다. 다만 그가 몰아본 스포츠카에 쓰인 4기통 엔진은 강력한 성능을 내지 못했는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엔진을 색다른 방법으로 마련했다. 비슷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또 하나의 자동차 업체인 라곤다를 인수해 애스턴 마틴과 합병한 것이다.

라곤다는 당시 6기통 엔진을 새로 개발했는데 경영난 때문에 그 엔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곤다 6기통 엔진은 벤틀리를 창업했던 월터 오언 벤틀리가 설계에 참여해 높은 수준의 성능을 냈고, 브라운은 그 엔진이라면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로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애스턴 마틴 라곤다라는 긴 이름의 회사가 탄생했고, 애스턴 마틴의 스포츠카 개발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자가토가 디자인한 DB4 GT 자가토는 클래식카 경매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브라운 시대 명차 중 하나다.
자가토가 디자인한 DB4 GT 자가토는 클래식카 경매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브라운 시대 명차 중 하나다.
브라운이 회사의 새 주인이 된 직후인 1948년에 애스턴 마틴은 완성된 새 모델을 영국 얼스 코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다. 아직 라곤다의 6기통 엔진을 얹기 전이어서 새 모델의 이름은 4기통 엔진의 배기량을 그대로 쓴 투 리터 스포츠로 정해졌다. 투 리터 스포츠는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압도적 성능을 내지는 못했지만 모터스포츠 출전을 통해 잠재력을 지닌 차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또한 애스턴 마틴을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 T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이듬해 르망 24시간 경주를 비롯해 모터스포츠 이벤트에 출전해 기술을 검증하고 보완한 뒤 1950년에는 본격적으로 라곤다 6기통 엔진을 얹은 새 모델이 출시되었다. 모델 이름은 DB2로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름 머리글자와, 그가 경영권을 쥔 뒤 두 번째로 내놓은 모델이라는 뜻의 2를 합친 것이었다. DB2를 출시한 뒤로 사람들은 브라운의 영향력 아래에서 개발된 첫 모델인 투 리터 스포츠를 간단히 DB1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23년은 DB 시리즈가 역사에 등장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과 뛰어난 성능 덕분에 DB2는 인기를 얻었고, 회사는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인기는 후속 모델들로도 이어졌고,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브라운은 차체 제작업체인 틱포드를 인수하고 틱포드의 근거지인 뉴포트 파그넬로 회사의 생산 설비를 모두 옮겨 시설을 확장했다. 뉴포트 파그넬 공장은 애스턴 마틴의 유일한 생산 시설로 2007년까지 운영되었고, 지금은 서비스와 클래식카 사업을 관리하는 애스턴 마틴 워크스의 근거지로 쓰이고 있다.

뉴포트 파그넬은 DB 시리즈 명차들의 산실이었다. 경주차 DBR1은 1959년 세계 스포츠카 선수권과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종합우승해 애스턴 마틴의 이름을 높였다. 1958년에는 스포츠카 DB4가 나왔고,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자가토가 디자인하고 차체를 만든 DB4 GT 자가토는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과 희소성, 개성 있는 스타일로 요즘도 클래식카 경매에서 인기가 높다.

‘영원한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브라운 시대를 가장 빛낸 모델이다.
‘영원한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브라운 시대를 가장 빛낸 모델이다.
그리고 1963년에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DB5가 나왔다. 이듬해 ‘007 골드핑거’에 등장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 속 자동차가 된 DB5는 첩보원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가 겹쳐져 애스턴 마틴을 화려하고 강력하며 특별한 차를 만드는 브랜드로 사람들의 기억에 또렷하게 새겨 놓았다. DB5로 시작된 본드카 계보는 1세대와 2세대 DBS, ‘스펙터’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DB10,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에 얼굴을 비춘 최신형 DBS 슈퍼레제라 등으로 이어진다.

브라운 시대 마지막 걸작은 DBS였다. 1967년에 첫선을 보인 DBS는 처음에는 DB6에 쓰였던 직렬 6기통 엔진을 얹고 나왔다. 그러나 1969년에 완전히 새로 설계한 V8 엔진을 얹은 모델이 DBS V8이라는 이름으로 추가됐다. DBS V8은 애스턴 마틴 역사상 첫 V8 엔진 모델로 성능은 물론 브랜드의 격까지도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했다.

DB 시리즈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더욱 세련되고 강력해지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브라운은 인수한 지 25년이 되는 1972년에 경영에서 손을 떼고 회사를 매각해야 했다. 브라운에게서 회사를 넘겨받은 새 주인은 DBS에서 직렬 6기통 엔진 모델을 빼고 이름을 단순히 V8로 바꿨다. 그 뒤로 한동안 쓰이지 않던 DB라는 이름이 되살아난 것은 몇 차례 더 주인이 바뀌고 난 뒤인 1993년의 일이었다.

거대 자동차 기업인 포드 산하로 들어간 애스턴 마틴이 야심 차게 개발한 DB7은 DB 시리즈 부활의 주인공이었다. DB7로 다시 시작한 DB 시리즈는 8을 건너뛰어 DB9으로 이어졌고, 시판되지 않은 DB10을 거쳐 현재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 라인업의 대표 모델인 DB11까지 나왔다. 그리고 DB 이니셜은 최상급 스포츠카인 3세대 DBS, 브랜드 첫 SUV인 DBX에도 쓰이고 있다. 회사를 회생시키고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브라운의 업적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사이에도 계속 모델 이름에 남겨둘 만큼 대단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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