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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일요일, 딩동댕 이어 ‘전국~’…당신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입력 2022-06-08 10:26업데이트 2022-06-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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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본명 송복희) 씨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8일 송 씨의 유족 등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건강상 이유로 34년간 진행해온 KBS 1TV ‘전국노래자랑’ 하차도 고민했지만, 최근까지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지난해 11월 개봉되기도 했다.

1927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후 ‘선전대’ 대원으로 북한을 돌며 공연하다 1950년 단신으로 월남해 국군에 입대했다. 1955년에는 창공악극단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전국을 돌며 재담과 가창력을 뽐낸 그는 1960년대 동아방송에서 ‘스무고개’와 ‘나는 모범운전사’에 출연했다. 특히 ‘스무고개’에선 코미디언 박시명(1924~1986)과 콤비로 유명했다.

‘전국노래자랑’ 최고령 MC 로 활동했던 고 송해. KBS 제공
1970년대까지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 고인은 1988년 5월 경북 성주 편부터 마이크를 잡아 말년까지 진행한 KBS ‘전국노래자랑’으로 국내 방송역사에 최고령·최장수 진행자로 기록됐다. 지난달에는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003년 8월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보기도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구수한 입담으로 국민들과 호흡한 그는 가수와 광고모델로도 활약했다. 2012년에는 IBK기업은행 광고에 출연해 대한민국광고대상 최고 광고 모델상을 받았다. 2003년과 2006년에는 애창가요 모음집 앨범을 내기도 했다. KBS ‘가요무대’에도 가끔 올랐다. 2016년 8월엔 서울 종로구에 고인의 공식 명예 도로인 ‘송해길’이 생겼다. 종로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다.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락희거리에서 송해씨가 신랑으로 방송인 전원주씨가 새색시 역할을 하는 ‘송해 장가가는 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락희거리는 낙원상가에서 탑골공원까지 조성된 거리를 말한다. 2018/10/31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고인은 연예인들의 연예인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원로연예인상록회를 열고 희극인은 물론이고 영화감독, 작가, 국악인을 막론하고 65세 이상의 예술인에게 사랑방 터줏대감 역할을 했다. 송 씨는 검소한 생활과 대중교통 사랑으로도 유명했다. 자택이 있는 서울 매봉역 인근에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낙원동 근처 종로3가역까지 거의 매일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가며 하는 걷기 운동을 최고의 건강관리 비결로 꼽았다. “BMW(버스(Bus), 메트로(Metro·지하철), 워킹(Walking·걷기)) 애호가”를 자처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위해서도 늘 대형 전세버스에 동승해 이동했다.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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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그는 이름난 주객(酒客)이었다. ‘매일 소주 3병’이 건강비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곧 ‘사람이 곧 재산’이라는 지론을 실천하는, 이색적인 길이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송해를 만난 자리에서 그를 가리켜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은) 당신이 최고 부자”라고 치켜세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유족으로 두 딸이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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