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예기치 못한 죽음이 비추는 삶의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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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김중혁 지음/208쪽·1만4000원/문학과지성사

마약과 같은 밀수품을 삼킨 뒤 다시 토해내는 방식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스왈로어’ 데이브는 기내에서 한 남성의 죽음을 목격한다. 데이브 옆자리에 앉은 잭은 데이브에게 “저 남자는 아마 헤로인이 담긴 콘돔을 삼켰다가 약물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섬뜩한 이야길 한다. 정체불명의 가루가 담긴 고무장갑을 삼킨 상태였던 데이브는 급사한 남성의 사인에 대한 잭의 가설을 들은 직후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낀다. 몸속의 벌레가 수백 개의 바늘을 들고 배를 푹푹 찔러대는 것처럼….

책은 죽음과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책 제목인 단편 ‘스마일’은 자신과 같은 스왈로어의 죽음을 목격한 데이브의 이야기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가득한 섬에 떨어졌다가 구출된 실존 인물 조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려던 작가가 조이의 사망 소식을 뉴스로 접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왼’은 연구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칼리와 부족을 관찰하던 중 결투를 벌였던 부족원 중 한 명이 죽으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기하의 이야기다.

타인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생하게 각인된다. 데이브는 “죽은 자의 얼굴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는 잭의 부추김으로 1등석에 운반된 스왈로어의 얼굴을 몰래 본다. 묘하게 미소를 띤 듯한 그의 얼굴을 데이브는 잊지 못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건다. 기하는 부족원의 결투 장면이 머리에서 영상처럼 재생됨을 느낀다. 그 부족은 오른손잡이를 배척했는데, 때마침 죽은 부족원은 오른손잡이였다. 기하는 결투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지만, 오른손잡이 부족원이 조직논리에 희생됐다고 추측한다.

예기치 못한 죽음과 마주한 인간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단편 ‘휴가 중인 시체’의 주인공인 프리랜서 작가 ‘나’는 버스를 집 삼아 전국을 유랑하는 주원을 취재하기 위해 그와 동행한다. 주원은 전날 먹은 술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로 스쿨버스를 운전했다가 아이를 죽일 뻔했다. 나는 주원과 이별하면서 곧 그가 죽을 거라 생각한다. 버스에 매달려 끌려갔던 아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던 주원을 떠올리며 나 역시 사죄할 상대를 생각하며 자신의 뺨을 때린다. 타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책이 향기#스마일#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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