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발한 상상력… 김초엽이 꾸린 환상 소설집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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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김초엽 지음·최인호 그림/216쪽·1만4500원·마음산책

행성 ‘시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이런 탓에 이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가면은 진짜 가면이 아니었다.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이 들러붙어서는 떨어지지 않고 증식했던 것. 문제는 이를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됐음에도 시몬 사람들 스스로 가면을 계속 쓰고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이 소설집은 ‘시몬을 떠나며’를 비롯해 단편 14편을 담았다. 모두 ‘시몬을 떠나며’처럼 “아니 도대체 왜?”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며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28세 작가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다.

폐업 직전의 휴게소 옆에 있는 기이한 식당과 의문투성이 주인 이야기(‘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왜 주기적으로 애절한 사랑 노래가 음원 차트를 지배하는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2040년대에서 2003년으로 온 ‘시간요원’ 이야기(‘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등 모든 작품이 소재가 기발하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설정을 토대로 몰입감을 증폭시키는 서사 전개 방식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2003년 큰 인기를 얻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를 연상시킨다.

표제작 ‘행성어 서점’은 인류의 뇌에 ‘범우주 통역 모듈’을 심어 모든 은하의 언어가 자동 통역되는 세상에서 모듈 작동을 방해하는 글자로 인쇄된 책을 파는 서점 이야기다. 낯선 외국어로 가득한 서점을 거니는 이국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위한 서점인 셈. 작가는 “이 서점 책들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았다”고 썼다.

동화 같은 상상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몇몇 소설은 궁금증만 키워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한 느낌이다. ‘멜론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대표적. 오키드거리의 멜론 장수와 멜론 수레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는 쌍둥이가 아님에도 똑같이 생겼다. 작가는 두 사람을 “동일한 존재의 다른 세계에 있는 판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건 이를 상쇄할 만한 참신한 이야기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행성어 서점#상상력#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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