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상이 詩가 될 수 있어요” 초등 전교생이 함께 시집 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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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약목초등생들 어린이 시집 ‘내 마음에 들어온 시’ 출간
구구단 외우는 마음에서부터 갓난 동생에 대한 애정까지
143명의 개성과 생각 담아내
지도교사 “詩와 더불어 성장”

어떤 시는 시라기보다 신세 한탄에 가깝다.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리는 한 문장짜리 시도 있다. 집안일을 시키면서 ‘아르바이트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투정을 다루기도 한다. 최근 발간된 어린이 시집 ‘내 마음에 들어온 시’(그루) 이야기다.

김현희 교사(38·여·사진)가 엮은 이 시집은 경북 칠곡군 약목초등학교 전교생 166명 중 143명의 시를 모아 발간됐다. “내 이름을 단 시가 외부로 공개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의견을 내비친 고학년 몇 명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교생의 시가 담긴 것.

김 교사는 이 학교에 부임한 2018년부터 시 동아리 지도를 해왔다. 그러다 올해 1학기엔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 수업을 했다. 그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가 약목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여서 모두에게 시를 가르친 뒤 ‘전교생 시집’을 내고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1학기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3편 이상 시를 써오라”며 숙제를 내줬다. “시 쓸 내용이 없다” “시가 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겐 일상의 모든 일이 시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이들이 다투면 화해시키며 “싸운 내용으로 시 써 온나. 니가 경험하고 느낀 게 다 시다”라고 가르치는 식. 한 학생은 이 같은 가르침에 ‘시 쓰기 싫은 심정’을 소재로 시로 쓰기도 했다. ‘선생님이/시를 10편 이상 쓰라고/협박하셨다.//정말 자퇴하고 싶다.’(6학년 최태영 ‘시’) 한 달 뒤 이 학생의 심정은 좀 달라졌다. ‘(전략) 아무래도 김현희 선생님 때문에/시에 중독된 것 같다’(‘주말’)

“학생들에게 ‘좋은 시 나쁜 시는 없지만 진짜 시 가짜 시는 있다’고 늘 강조해요. 감정이 묻어나지 않거나 어설픈 말재주를 부리는 시는 ‘가짜 시’라고요. 시를 써오면 무조건 칭찬해줬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시를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집은 숙제 중 학생 각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며 선택한 시로 구성했다. 자유롭고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가 개성 넘치는 일상과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시의성을 반영한 ‘삼행시’(6학년 박현준)라는 시도 있다. ‘집으로 가는 길/우리 가족은 삼행시 삼매경.//“개미집으로 삼행시 해볼게.”/개 미들이 단체로/미 쳤나보다 이 시국에/집 단생활이라니 (중략) 그 말을 들은 막내는/자기도 하겠다며/‘소름’으로 이행시를 한단다.//소 가 운다./름 매.’

한 문장짜리 시 ‘구구단 외우기’(2학년 이시우)의 내용은 이렇다. ‘2단에서 7단까지는 외울 수 있는데/8단에서 끊긴다.’

‘치킨의 수명’(4학년 심형준)을 보면 치킨을 진지하게 관찰한 뒤 ‘치킨의 수명은 하루’라는 결론에 도달한 초등학생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진다. 일상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평소와 다른 느낌’(6학년 조율)이란 작품도 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온 날./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들.//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빛을 즐기는 식물들./그리고 차분한 분위기.//같은 집이지만/평소와는 다른 느낌.’

조율 군(12)은 “시를 배우며 사소한 것도 자세히 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엄마와 전망대에 놀러간 경험을 녹여 ‘전망대’라는 시를 쓴 전예닮 양(9)은 “시를 쓰면 좋았던 일이 생각나서 행복하다”고 했다. 경북도교육청과 칠곡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발간된 시집은 약목초등학교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김 교사는 남은 한 학기도 전교생 대상 시 지도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함, 불만 등 내면의 감정을 시를 통해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칠곡 약목초등학교#김현희 교사#어린이 시집#내 마음에 들어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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