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나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7-30 10:36수정 2021-07-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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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서비스는 조직화된 사회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온기를 원하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파고든다.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상사에게 야단을 맞고 풀이 죽었다. 누구에겐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친구나 가족에게 얘기했다가는 싫은 충고까지 덤으로 들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신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미메시스)의 저자 모리모토 쇼지는 2018년 6월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곤 자신의 이름도 ‘렌털 아무것도…’로 바꿨다. 얼핏 심부름 같지만, 그저 ‘있어줄’ 뿐, 적극적인 역할은 절대 맡지 않는다는 서비스다. 저자의 얘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인터뷰를 한 건 아니다. 책의 내용을 정리했으므로 ‘가상’도 아니다.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진행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뢰가 들어오면 마음에 드는 일만 응한다. 교통비와 식비(발생할 경우) 이외의 돈은 받지 않는다. 재미있는 얘기는 의뢰자의 신원 정보를 빼고 SNS에 올린다.”




―어떤 의뢰들이 들어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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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청소를 잘 하나 보고 있어 달라, 공원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면 이상해 보이니 함께 마셔 달라, 재판을 방청해 달라, 연인 자랑을 들어 달라, 이사를 가는데 역에서 배웅해 달라, 마라톤 결승선에서 기다려 달라,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해 달라….”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글을 썼는데, 다른 사람이 ‘이 정도 해주겠지’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한 심리상담사가 ‘급여는 존재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가치가 있다’고 쓴 걸 보고 시작했다.”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의뢰할까.

“우선,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의뢰가 많다. 친구에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친근한 사람에게는 더 입을 닫게 된다. 내가 있어주는 것만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신인상에 응모할 소설을 쓰는 걸 지켜보아 달라, 아침에 잘 못 일어나니 약속장소에 나와 있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왜 돈을 받지 않는가.

“돈이 오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의 실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의뢰인과 상하관계가 생기게 된다.”

―본인에게는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이 일로 글을 쓰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경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괜찮은 취재방식 아닌가.”

TV도쿄가 올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동아일보DB


―그 경험들로 실제 책 여러 권(만화 포함)을 냈고 TV드라마도 나왔으니 성공한 것 같다. 따라 하는 사람은 없나.

“‘뭐든지 하는 사람’같은 서비스가 생겼지만 일용직 아르바이트 의뢰만 받아서 접었다고 들었다. 내 컨셉트를 그대로 베낀 사람도 있었지만 SNS로 스토리를 공유하지 않아서인지 성공하지 못했다.”


―미래 세상은 대부분의 일거리를 인공지능(AI)이 가져가고 ‘사람 냄새’가 중요한 일만 남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스펙이 낮기로 자신이 있다. 세상에는 스펙에 상관없이 ‘인간에 대한 수요’가 있다. 나는 이 일이 촉매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거나 늦춰주는 촉매 말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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