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주고 산 기타, 녹음하고 상까지… 복덩이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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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청파소나타’로 작년 최고의 앨범 주인공 된 정밀아 인터뷰
“‘청파’ 발음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볼수록 서린 이야기가 많아
잔잔하지만 ‘드라마’ 담으려했죠”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는 “기타 소리에 담긴 청량감, 연주자의 손맛이 난 정말 좋다. 음표를 적게 쓰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는 “기타 소리에 담긴 청량감, 연주자의 손맛이 난 정말 좋다. 음표를 적게 쓰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음악은 청각의 예술이다. 당연하지만 이 시대엔 어쩐지 새삼스러운 이 명제가 지난달 28일 재확인됐다.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음반’에 ‘청파소나타’가 호명된 순간에 말이다.

싱어송라이터 정밀아의 3집 ‘청파소나타’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살며 채록한 도시의 소음을 수수한 포크 장르에 담은 작품이다. 1번 곡 인트로의 차 소리와 새 소리에 이어 울리는 인간의 첫 음성은 이렇다.

‘하늘, 하늘을 바라보는가’(‘서시’ 중)

첫 소절부터 서울의 하늘은 춤사위도, 화장기도 없이 반 층쯤 내려앉는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따온 소박한 시어가 나일론 기타의 분산화음에 매달려 있다가 6번 줄 G(솔) 음으로 덜컹 떨어질 때, 청파동 낮은 풍경이 눈앞에 첩첩이 펼쳐진다.

“2012년에 중고로 5만 원 주고 산 기타예요. 1집, 2집, 3집 다 이걸로 녹음하고 이렇게 큰 상까지 타게 해줬으니 복덩이네요.”

정밀아가 기타를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웃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이 좋았지만 화가가 되려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뒤 10년간 동네 미술교실을 운영하다 문득 ‘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2012년 초여름이었을 거예요. 누구나 올라가서 노래할 수 있는 ‘오픈 마이크’라는 이벤트를 안 것이.”

서너 달 급히 독학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그날에 관객도 없었는데 왜 그리 떨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혼자 대학 시험 보러 온 날 (중략) 그날 밤 내가 걸어 나온/서울역…’(‘서울역에서 출발’ 중) 근처 청파동으로 이사한 것은 2019년이다.

“경북 포항 출신이에요. 상경해서 이문동, 보문동, 홍제동, 효창동, 연희동을 옮겨 다니며 살았죠. 기차 타고 지방 공연 다녀오면 택시 잡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 청파동을 택했어요.”

코로나19로 생활 반경도, 공연 일도 줄어들자 동네 산책에 몰두했다. 우뚝 솟은 빌딩 아래 납작 엎드린 건물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빌라 지하는 죄다 봉제공장이더라고요. 가파른 계단도 많고요. ‘청파’라는 발음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알아볼수록 서린 이야기가 많았어요.”

‘청파랩소디’도, ‘청파심포니’도 아닌 ‘청파소나타’를 떠올린 것도 산책하다 세광음악출판사 사무실을 발견해서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치며 봤던 ‘소나티네 곡집’을 내던 출판사였어요. 클래식의 소나타 형식과 저의 앨범 구성이 비슷하기도 하고요.”

정밀아 노래의 힘은 힘을 뺌에서 나온다. ‘서울역에서 출발’은 목이 제대로 잠긴 아침에 녹음했다. 속삭이듯 사각대는 창법에, 그러나 “잔잔하지만 분명한 드라마를 넣으려 했다”고 했다. 5번 곡 ‘광장’의 말미, ‘누군가의 외면과 (중략) 누군가의 전부가 여기/여기… 여기…’에서 뜨겁게 토하는 숨 같은 노래 말이다.

‘큰불이 일었어요’ ‘역병도 시작됐어요’라 노래하는 7번 곡 ‘환란일기’가 귀여운 동요 형식을 빌린 것은 역설이다. 그는 “나는 감히 활동가도 정치가도 아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에 둘러싸여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가’를 그저 담았다”고 했다.

“제 노래를 들여다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제 노래는 지금도 어딘가로 계속 흘러가고 있겠죠?”

디지털 음정 보정을 결코 하지 않는 정밀아의 낮고 뜨거운 노래는 20일 오후 6시 마포구 구름아래소극장 공연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기타#청파소나타#정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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