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억압 뚫고 이뤄낸 인간 지성史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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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이승희 옮김/408쪽·2만 원·다산초당

15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콘돔 사용에 대한 조사보고서 작성을 바티칸 당국에 전격 지시했다. 에이즈 감염 확산 등 콘돔 사용 필요성이 가톨릭계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된 데 따른 것. 대중과 언론은 피임을 금지하는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바티칸 보건부가 7개월에 걸쳐 작성한 200쪽짜리 문건은 교황에게만 보고됐을 뿐, 그 내용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이 책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현재의 ‘빅브러더’ 논란까지 지식의 억압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과학사를 가르친 교수로 빌트 등 독일 유력 매체들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 책은 현대인이 당연시하는 보편적 과학 지식마저도 당시의 종교·사회적 이데올로기와 투쟁을 거친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근대수학의 금자탑인 미적분학을 낳은 무한소(無限小·무한히 작은 수) 개념은 이탈리아 예수회와 영국 국교회 그리고 영국 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이들은 무한소가 ‘세계는 엄격한 수학적 질서가 지배하는 완전히 이성적인 곳’이라는 자신들의 철학과 배치된다고 봤다. 특히 약육강식의 무질서에 맞서 국가 권위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홉스에게 질서정연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한소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한소에 대한 억압을 거부하고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통해 세상은 바뀔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성#인간 지성#금지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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