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단상(斷想) [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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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월 17일 0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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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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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음식이다. ‘푹 삭혀야 맛’이라는 마니아가 있는가 하면 시큼하고 쿰쿰한 맛에 절레절레 손사래 치며 달아나는 이도 있다. 이맘때 먹는 홍어회는 쫄깃쫄깃하면서도 차지다. 뼈째 먹는 그 맛은 씹을수록 깊다. 홍어는 코와 애, 날개를 특히 쳐준다. 이 중 ‘애’란 표현을 쓰는 게 홍어의 맛을 더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애’는 ‘창자’인데 생선에서는 ‘간’을 뜻하기도 한다. 톡 쏘는 독특한 맛과 암모니아 썩는 듯한 냄새로 유명한 홍어애탕(홍어내장탕)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서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뜻의 ‘애끊다’는 ‘단장(斷腸)’의 의미다. 6·25전쟁 때 울고 넘었다는 미아리고개를 ‘단장의 미아리고개’라고 하는 이유다. 비슷하지만 속뜻 차이가 큰 것으로 ‘애끓다’가 있다. ‘애가 끓는다’는 것은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부글부글 끓는 상태’를 말한다. ‘애간장을 태우다’와 뜻이 통한다. ‘애끊다’가 고통을 수반한다면 ‘애끓다’는 초조와 불안에 가깝다고나 할까.

홍어는 암컷이 단연 맛있다. 수컷은 살이 푸석하고 뼈가 억세다. 그중에서도 수컷 거시기는 영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거시기를 구워 먹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잘라서 없애버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상대를 무시할 때 ‘홍어 거시기’라는 말도 생겼다.

이 대목에서 느닷없이 부부(夫婦)를 뜻하는 토박이말 ‘가시버시’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가시’는 아내를 뜻한다. 그렇다면 버시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일 듯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고 보니 아들 많은 집의 외딸로 ‘고명딸’은 있어도 고명아들은 없다. 여고생은 있어도 남고생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웃자고 해본 소리지만, 남자의 처지가 홍어 거시기를 닮은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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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곰삭은 홍어 코 몇 점을 먹으면 콧속이 뻥 뚫린다. 그야말로 ‘식욕을 당기는’ 맛이다. 이를 두고 ‘식욕을 댕기는’ ‘식욕을 땅기는’이라고 하는 이가 더러 있다. ‘입맛을 돋우거나 식욕이 생긴다’는 뜻으로는 ‘당기다’이다. ‘땅기다’도 표준어이긴 하지만 ‘얼굴이 땅긴다’ ‘종아리가 땅긴다’처럼 써야 한다. ‘댕기다’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처럼 불이 옮아 붙거나 불을 옮겨 붙일 때 쓴다.

사람들의 홍어 사랑은 변함없다.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맛 때문이다. 말 씀씀이에서도 그렇다. ‘홍어에 탁주를 곁들여 먹는다’는 홍탁(洪濁)은 우리말샘에 올랐다. 언중은 더 나아가 ‘홍탁삼합(洪濁三合)’까지 입에 올린다. 홍탁삼합은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 김치 세 가지를 합해 만든 요리를 말한다.

함께 어울려 먹는 시크무레한 이 맛엔 과메기와 돔배기처럼 삶의 냄새가 듬뿍 배어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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