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모신 손님들인데… 코로나 때문에 ㅠ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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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공연 담당 PD들이 말하는 내한공연 취소·연기 뒷이야기
아크람 칸-크리스털 파이트 등 해외 거장 공연 눈앞에서 취소
소품 옮기는데만 배로 석달 걸려… 화물 선적前 취소 결정해야
항공비 등에 수천만원 손해… 팬데믹 시대 맞는 매뉴얼 필요

공연이 취소된 해외 프로덕션 연출가, 안무가 등은 국내 기관에 직접 e메일을 보내 “속상하고 안타깝다. 작품을 한국에서 꼭 올리고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국립극단 제공
공연이 취소된 해외 프로덕션 연출가, 안무가 등은 국내 기관에 직접 e메일을 보내 “속상하고 안타깝다. 작품을 한국에서 꼭 올리고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국립극단 제공
“관객 안전을 위한 내한공연 취소, 연기 결정에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 국립극장,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 아크람 칸, 매슈 본, 크리스털 파이트, 밀로 라우, 쥘리앵 고슬랭…. 해외 유명 프로덕션과 거장의 라인업이 유독 화려했던 올해. ‘귀한 손님’의 공연을 눈앞에 두고 취소해야 했던 담당 프로듀서들은 허탈하다 못해 속이 쓰리다. 배우, 제작진보다 먼저 바다를 건너온 공연세트, 소품들을 부산항에서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냈다. 막도 올리지 못하고 극장 문을 닫아야 했던, 그 치열하고 안타까운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매슈 본의 무용 ‘레드 슈즈’. LG아트센터 제공
매슈 본의 무용 ‘레드 슈즈’. LG아트센터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에서 심해지고 올 2월 한국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해외 프로덕션 측은 “공연이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LG아트센터의 이현정 기획팀장은 “어떻게든 공연을 올리려는 마음뿐이었다. 어렵게 섭외한 작품들이라 더 간절했다”고 말했다. 몇 년에 걸친 사전작업과 해외 제작진의 국내 공연장 답사까지 끝낸 경우도 많았다.

장르와 작품별로 다르지만 유럽, 미국에서 보내는 무대 세트와 소품은 보통 20피트 또는 40피트 컨테이너 두세 대에 실려 온다. 배로 두 달, 길게는 석 달 걸린다. “공연일이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 취소하느냐”는 물음도 있지만 통상 현지에서 화물을 선적하기 전 취소 결정을 해야 한다. 40피트 컨테이너 1대 기준 왕복 선적비용(약 1400만 원)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 단독 초청 공연이 아니라 해외투어인 경우 셈법은 더 복잡하다. 여러 국가의 선적기간, 비용, 공연장 일정이 묶여 있어 한 나라라도 ‘공연 불가’ 입장을 밝히면 이것들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6월 국립극단 초청작인 RSC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영국 공연 후 미국 한국 일본 투어가, 국립극장 초청 쥘리앵 고슬랭의 작품은 프랑스 대만 한국 투어가 예정된 상황이었다. 정채영 국립극단 PD는 “매일 뉴스를 보며 한 달 넘게 해외 담당자와 상황을 주고받느라 ‘전우애’까지 생겼다”고 했다.

공연 시점을 한 달 반 정도 남기고 취소 결정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날이 임박했다. 국내외에서 화상통화나 e메일로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동안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했다. 국공립 예술기관의 재개관도 논의되며 ‘6, 7월이면 공연을 올려도 되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외가 문제였다. 공연을 강행하더라도 해외 제작진이 도착하면 2주간 의무 격리해야 한다. 확진자라도 나오면 대체인력이 필요하다. 국내 공연을 하려면 받아야 하는 단기취업비자 발급 요건도 강화돼 취득이 쉽지 않았다. 항공편도 하나둘씩 막혔다.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매일 수천만 원씩 불어났다.

아크람 칸의 마지막 장편 솔로 무용 ‘제노스’. LG아트센터 제공
아크람 칸의 마지막 장편 솔로 무용 ‘제노스’. LG아트센터 제공
결국 계약의 ‘불가항력’ 조항에 따라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조화연 국립극장 PD는 “2020년 현재,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시의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지 못해 안타깝지만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관객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25일로 예정됐다가 취소된 무용 ‘제노스’는 “꼭 한국 팬을 만나고 싶다”는 창작자 아크람 칸의 바람에 따라 공연세트를 국내에 보관 중이다. 사태가 진정되면 언제라도 공연을 올리겠다는 것.

국내 공연업계 측은 “향후 모든 해외 작품 초청이 막히진 않을지 걱정된다”며 “공연 섭외와 성사 못지않게 계약을 맺을 때 ‘일신상의 이유’나 ‘불가항력’ 정도로 논의하던 취소 사유 등을 더 세밀하게 구체화하고 팬데믹 시대에 맞는 매뉴얼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코로나19#내한공연#취소#아크람 칸#크리스털 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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