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렌지 마멀레이드’는 어떤 맛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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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김지현 지음·최연호 감수/355쪽·1만4800원·비채

세계 명작소설을 읽던 어린 시절, ‘오렌지 마멀레이드’ ‘양배추조림’처럼 생소하지만 군침을 돌게 하는 낯선 음식 이름을 보며 어떤 맛일까 궁금해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은 독자 나름의 상상으로 이해되곤 했다. “근사한 맛, 냄새, 색채, 감촉, 소리. 내 멋대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지만 동시에 나만의 마법이기도 했다”는 이 저자의 회고처럼 말이다.

이 책은 ‘하이디’의 검은 호밀빵에서부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콘비프, ‘안나 카레니나’의 플렌스부르크 굴,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의 월귤(越橘)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음식을 매개로 번역, 추억, 독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는 산앵두나뭇과인 링곤베리가 월귤로 번역돼 있다. 작가는 어릴 적 자연스럽게 이를 신비스러운 귤 정도로 상상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외로운 신’에 나오는 롤빵은 원래 번(bun)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달콤하고 푹신푹신한 롤케이크로 이해했다. 번역 과정에서 달라진 단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런 오해는 오히려 상상력의 원천이 돼 작품을 독특한 분위기로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고전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저자를 사로잡은 건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아니라 19세기 말 러시아의 화려한 귀족사회 면면이었다. 낯설고 진기한 이름의 소품, 멋진 드레스, 군침 도는 식사. 그중 모스크바의 한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 준비된 플렌스부르크산(産) 굴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이다. 값비싼 굴을 방탕히 즐기는 오빠 오블론스키와 무언가 먹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 안나의 모습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저자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인물들의 삶의 행로와 가치관을 가늠하며 작품을 읽어나간다.

실제 음식뿐 아니라 빨간 머리 앤이 마신 나무딸기 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먹은 아주 작은 케이크처럼 상상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실었다. 저자가 이해(혹은 오해)했던 음식과 최연호 파티시에의 감수를 받아 정리한 실제 그 음식에 대한 정보와 유래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재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생강빵과 진저브레드#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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