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의사의 훙커우 의거 직후 동아일보는 ‘호외’를 발행했다. “조선인이 폭탄을 던졌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날 두 번째 호외를 통해 머리기사 제목으로 ‘조선인으로 판명, 윤봉길, 연령 25세’라면서 윤 의사의 이름과 신상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상하이 현지 신문도 윤 의사의 신원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호외는 현재 상하이 마당로의 임시정부 청사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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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 폭살 계획’ ‘다롄 의거’…한인애국단의 끝없는 투쟁 ▼
한인애국단의 대표적인 거사는 이봉창 윤봉길 두 의사의 의거이지만, 이 밖에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1932년에 접어들어 한인애국단의 주도로 준비되거나 실천에 옮겨진 거사는 5개월 동안 6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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