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에 아직 목마르다”… 소극장 무대서 웃음 캐는 개그맨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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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가 넷플릭스와 선보인 스탠드업 코미디 ‘농염주의보’. 넷플릭스 제공
박나래가 넷플릭스와 선보인 스탠드업 코미디 ‘농염주의보’. 넷플릭스 제공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는 ‘웃음 사냥꾼’들이 잇따라 TV 밖 무대로 향하고 있다. 코미디 연극, 소극장 개그 쇼부터 마이크 하나만 덩그러니 놓은 채 작은 펍에서 펼치는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대중에게 개그를 선보일 프로그램이 점차 줄고, 영화나 넷플릭스 등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각광받으며 개그맨들은 무대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정통 코미디’에 대한 갈증을 무대 러시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1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 코미디 연극 ‘잇츠 홈쇼핑 주식회사’ 무대에는 낯익은 얼굴이 많다. 조혜련, 장동민, 김영희, 김승혜 등 유명 개그맨이 대거 배우로 출연한다. 홈쇼핑 방송 현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극 안에서 이들은 100분 동안 서사에 맞게 대사를 소화한다. 이따금씩 거친 욕설과 애드리브로 웃음을 뽑아내기도 했다.

대표 예능인 이수근도 ‘윤형빈의 개그 쇼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이수근의 웃음팔이 소년’을 현재 공연 중이다. 텅 빈 무대에 기타 하나만 들고 올라 동료 개그맨들과 선보이는 음악 콩트는 관객으로부터 “개그콘서트에서 보여주던 정통 콩트를 떠올리게 한다”며 반응이 뜨겁다. 이 밖에 김대희, 김준호, 윤형빈, 김대범 등도 아예 직접 소극장을 차려 오랜 기간 동료 선후배들에게 무대를 제공해왔다. 자체 정기공연은 물론 새로운 개그 쇼도 기획한다.

이들이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일단 개그 프로그램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KBS ‘개그콘서트’와 tvN ‘코미디빅리그’, comedy TV ‘스마일킹’만이 개그를 선보일 방송 플랫폼으로 살아남았다. 대부분은 시청률이 떨어지고 화제성도 부족하단 이유로 사라져갔다.

이런 상황은 개그맨들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정통 코미디’에 대한 갈증을 더욱 커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윤형빈은 “레트로 개그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잘 짜인 악극 같은 쇼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개그맨 이수근의 ‘웃음팔이 소년’, 윤형빈 소극장에서 콩트를 공연 중인 개그맨들(왼쪽부터). 윤소그룹 제공
개그맨 이수근의 ‘웃음팔이 소년’, 윤형빈 소극장에서 콩트를 공연 중인 개그맨들(왼쪽부터). 윤소그룹 제공
몇 안 남은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수년째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정태호는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싸매고 회의해도 방송에 나가는 건 고작 2∼3분이 전부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가진 개그맨들에게는 무대가 오롯이 자신을 표현할 해방구”라고 했다.

마침 영화나 유튜브 등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스탠드업 코미디의 약진은 이들의 무대 러시를 부채질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쇼 ‘코미디 헤이븐’을 운영하는 정재형은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 명이 5분 넘는 시간을 사용하며, 관객과 즉각적으로 소통하는 매력이 있다. 관객의 웃음을 걸고 개그맨으로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신랄한 사회 풍자, 수위가 높은 성적 농담 등 표현 수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도 개그 무대만의 장점이다. 넷플릭스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 박나래는 “방송에서 할 수 없던 성(性) 얘기를 쿨하게 풀어놓을 자리가 없었다. ‘59금, 69금’이라는 리뷰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더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무대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병행하고 있는 김영희는 “언더 개그 무대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장에서는 표현 제약이 적고, 애드리브도 훨씬 자유롭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수근은 “공연만이 주는 긴장감도 있고,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웃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쇼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관객과 많이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조혜련은 “코미디 연극은 27년 전 신인 개그맨이 됐을 때처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짜릿함이 있다”고 했다. 아직은 불씨 수준이지만, 어쩌면 그들의 목마름은 들불처럼 번질지도 모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코미디 연극#소극장 개그쇼#스탠드업 코미디#박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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