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행복 위해 불행하게 사는 삶의 아이러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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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을 채워라/히라노 게이치로 지음·이영미 옮김/600쪽·1만5800원·문학동네

“드디어 생각났어. 마지막에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죽었는지.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 살고 싶다! 이상하니? 하지만 정말로 그랬단다. 죽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

평범한 30대 가장 쓰치야 데쓰오는 어느 날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리고 3년 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로 회의실 의자에서 눈을 뜨며 살아 돌아온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난 기쁨도 잠시, 데쓰오는 자신이 자살했단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는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기억과 장소, 지인들과의 관계를 더듬기 시작한다.

‘얼굴 없는 나체들’ ‘던’ 등 현대인의 정체성과 동시대 사회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써 온 저자가 ‘사람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서스펜스 소설로 풀어냈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성실히 일했던 데쓰오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과 슬픔을 안기며 자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을 것이란 의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하게 지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허무했던 삶이 서서히 드러난다. 삶을 반추하며 생과 사의 의미를 온몸으로 다시 느끼다가 “잘못돼 버린 나를 없애고 싶었다”고 깨닫는 그의 독백이 쓸쓸하다. 마침내 데쓰오는 가족과 이웃, 동료들과 지난 3년의 공백을 다시 새롭게 채워간다.

데쓰오가 아내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저녁 식탁에 오른 샐러드 접시 속 하트 모양으로 잘린 토마토를 세밀히 묘사할 정도로 전개가 빠르지는 않다. 이런 긴 호흡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란 설정이나 환생자연대모임 같은 기이한 현상에 설득력을 부여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공백을 채워라#히라노 게이치로#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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