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최후 모습, 미공개 사진까지 찾아가며 재현

  • 동아일보

영화 ‘1987’ 꼼꼼한 시대 고증

영화 ‘1987’의 세트장과 촬영 현장. ①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연세대 앞 시위 장면은 제작진이 가장 공을 들였다. ②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 물고문 특종을 이어간 동아일보 편집국 내부와 ③남영동 고문실 509호도 실제와 똑같이 재현했다. ④명동성당은 영화사상 최초로 촬영허가가 이뤄졌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의 세트장과 촬영 현장. ①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연세대 앞 시위 장면은 제작진이 가장 공을 들였다. ②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 물고문 특종을 이어간 동아일보 편집국 내부와 ③남영동 고문실 509호도 실제와 똑같이 재현했다. ④명동성당은 영화사상 최초로 촬영허가가 이뤄졌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4일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지 8일 만이다. 이한열과 박종철. 두 젊은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다룬 만큼 제작진은 시대 고증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제작 현장을 총괄한 우정필름 정원찬 프로듀서(PD)는 “제작비(145억 원)의 20%를 상회하는 수준을 미술 소품 의상에 투입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시대물보다 많은 수준”이라며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이 많고, 젊은층은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간접 체험할 것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 고증했다”고 밝혔다.

○ 30년 전 거리, 건물 그대로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연세대 정문 앞과 시청 앞 광장, 명동 거리를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4만5000평 부지에 세트장을 지었다. 당시 거리 사진 수천 장과 뉴스 영상까지 찾아본 뒤 주요 건물들의 실제 크기를 비슷하게 반영했다. 특히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숨진 모습과 전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 씨가 찍은 미공개 현장 사진까지도 모두 제공받았을 정도다.

또 박 씨를 고문한 남영동 대공분실 촬영을 앞두고 제작진은 옛 모습대로 보존돼 있는 509호를 찾아 당시 공문서의 서체와 고문실 가구의 재질, 문고리와 스위치는 물론이고 문에 붙은 ‘509호’ 푯말까지 실측해 와 세트장에 반영했다. 영화 속 박종철 물고문 사건 특종 보도를 이어간 동아일보 지면을 동아일보사 자료실에서 구입해 촬영에 활용하기도 했다.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 섭외에도 공을 들였다. 한국 영화 처음으로 명동성당에서 촬영이 이뤄진 게 대표적이다.

정 PD는 “처음엔 성당 측에서 ‘영화 촬영을 허가한 적 없다’고 하기에 감독님이 직접 찾아가거나 그래도 안 되면 함세웅 신부님까지 찾아가려고 했다”며 “다행히 시나리오와 개요를 보내자 영화 취지에 공감하며 흔쾌히 허락해 줬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제작진은 주요 촬영지를 섭외하기 위해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민주화 인사 김정남(설경구)과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교회 장면은 옥상과 첨탑이 갖춰진 경남 통영 충무교회에서, 연희(김태리) 가족이 운영하는 ‘연희슈퍼’는 전남 목포 서산동의 한 골목 언덕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촬영했다.

○ 실존 인물 고증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 실존 인물이 있다. 제작진은 몇 번 얼굴을 비추지 않는 조연들까지 실존 인물 사진과 비교해 가며 이미지가 비슷한 배우들을 섭외했다는 후문. 특히 악역인 대공수사처 박 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은 “실제 인물이 평안도 말투를 썼다는 고증이 있어 평안남도 출신인 사람을 만나 수업을 받고 녹음도 했다”며 “실존 인물처럼 하관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침이 흘러도 마우스피스를 끼고 대사를 했고, 실제 거구라 옷 속에 패드도 넣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에는 실제 박 씨가 생전에 쓰던 안경이 등장하기도 한다. 제작진은 맨 처음 안경 본을 뜨기 위해 박종철 기념사업회 측에 실제 유품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사업회 측은 영화 촬영에 아예 유품을 빌려줬다. 영화에서 박종철 역을 맡은 배우 여진구의 영정사진 속 낡은 안경은 실제 박 씨의 안경이다.

영화 속 실존 인물들의 유족과 당사자들을 위해 최근 특별 시사회까지 연 CJ엔터테인먼트 측은 “혹시 작은 장면이라도 유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돼 최대한 사실 그대로 다루려 했다”며 “영화를 본 유족들도 시대를 꼼꼼히 고증하고,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낸 제작진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영화 1987#이한열#명동성당#서울대 학생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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