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해설 1000번… 이순신에 반한 ‘울돌목 日人’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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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우에노씨

일본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우에노 하루미 씨가 전남 해남군 앞바다에서 관광객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우에노 씨는 10년간 해남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해남군 제공
일본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우에노 하루미 씨가 전남 해남군 앞바다에서 관광객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우에노 씨는 10년간 해남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해남군 제공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유리병 목처럼 좁아지는 바닷길이 바로 울돌목(鬱陶項)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거두었던 곳이다. 10년 동안 이곳에서 관광객에게 울돌목과 명량대첩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설명하는 일본인 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도쿄(東京) 출신 우에노 하루미(上野治美·46) 씨. 1997년 한국인 남편(51)과 결혼 후 다섯 자녀(2남 3녀)를 둔 주부다.

 우에노 씨는 해남에 살면서 임진왜란과 명량대첩, 이순신 장군을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알지 못했던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책과 드라마 등을 통해 접하고 공부하며 가장 존경하게 됐다. 그는 25일 “이순신 장군이 안 계셨다면 조선이 없을 것이다. 조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고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에노 씨는 2007년 3월 해남군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해 지금까지 10년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 해 평균 100차례 울돌목에서 관광객들에게 명량대첩을 소개한다. 그가 관광객들에게 처음 알려주는 건 “물길(조류)은 밀물일 때 남쪽에서 서쪽으로, 썰물일 때 서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는 울돌목의 특징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이런 울돌목의 특성을 이용한 전술의 성과로 유명하다. 선조 30년(1597년) 판옥선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맞아 싸워 적선 31척을 격파한 게 명량대첩이다. 울돌목은 빠른 바닷물이 해안에 부딪혀 요란한 울음소리같이 들려 명량(鳴梁)으로도 불렸다.

 우에노 씨가 울돌목의 특징과 명량대첩을 설명하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그는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에서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 장군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참도와 영패 곡나팔 등 모조 팔사품(八賜品·보물 제440호)을 소개한다. 충무공 팔사품으로 불리는 8가지 물건의 진품은 경남 통영시 충렬사에 있다.

 우에노 씨는 설명에 앞서 관광객들에게 “나는 일본 출신으로 해남에서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이라고 반드시 소개한다. 나중에 해설사가 일본인인 걸 알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어서다. 최근까지도 일부 관광객은 “명량대첩을 설명하는 사람이 하필 일본인이냐”며 불쾌해하거나 자리를 떴다. 2014년에는 관광객 한 명이 해남군에 항의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우에노 씨도 ‘행여 다른 사람들도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해설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해남군 직원들과 가족의 격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 해설을 계속하고 있다. 해남군 문화관광과 직원 최모 씨(34·여)는 “해설 능력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만두게 하는 건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매년 울돌목에서 열리는 명량대첩축제에는 이순신 장군의 후손은 물론이고 중국 진린(陳璘) 장군의 후손과 당시 적으로 맞섰던 일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 장군의 후손도 참석한다. 구루시마 장군 후손의 방문은 명량대첩 직후 왜군 시신을 진도 왜덕산에 합장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다. 우에노 씨는 “한일 갈등이 커지면서 자녀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울돌목이 화해의 공간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이끌어 두 나라가 화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남=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이순신#명량대첩#우에노 하루미#해남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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