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을 샀는데 책이 딸려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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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책시장 ‘굿즈 열풍’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본사에서 신간 기획회의 중에 머그컵, 에코백, 베개 등 이벤트에 사용할 굿즈 제품을 살펴 보고 있다. 알라딘 제공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본사에서 신간 기획회의 중에 머그컵, 에코백, 베개 등 이벤트에 사용할 굿즈 제품을 살펴 보고 있다. 알라딘 제공
 “오…. 이건, 사야 해.”

 설마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잠깐 취재 아이템 확인을 위해 구경할 마음으로 접속한 인터넷서점 사이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가락은 어느새 카드결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굿즈(goods) 수집을 위해 책을 구매한다고? 말도 안 돼.’ 자신만만 코웃음 쳤던 게 부끄러워졌다.

 2년여 전부터 화제가 된 온라인 책 시장의 ‘굿즈 경쟁’이 새해 들어 한층 본격화될 조짐이다. 원래 ‘제품’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굿즈는 최근 대중음악, 애니메이션과 영화, 책 등 문화 콘텐츠의 판촉을 위한 파생상품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책 관련 굿즈로는 표지 디자인 이미지를 활용한 무릎담요, 냄비받침, 책 모양 베개 등이 인기를 모은다.

〈1〉 펠트와 인조가죽으로 만든 알라딘의 북 커버. 〈2〉 데스크 매트. 특정 책을 구입하면 회원 마일리지를 차감하고 굿즈를 준다. 〈3〉 교보문고 온라인이 경제경영서를 구매하면 제공하는 마우스용 손목 쿠션. 〈4〉 예스24가 출판사와 협업해 내놓은 리커버 시리즈.
〈1〉 펠트와 인조가죽으로 만든 알라딘의 북 커버. 〈2〉 데스크 매트. 특정 책을 구입하면 회원 마일리지를 차감하고 굿즈를 준다. 〈3〉 교보문고 온라인이 경제경영서를 구매하면 제공하는 마우스용 손목 쿠션. 〈4〉 예스24가 출판사와 협업해 내놓은 리커버 시리즈.
 인터넷서점 시장에 굿즈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굿즈 선두주자’ 알라딘이다. 이 회사가 해마다 집계하는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 중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한 까닭’을 묻는 질문에 ‘굿즈가 마음에 들어서’를 선택한 응답자 비율은 지난해 12%로 ‘가격’과 ‘중고 서비스’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2년 전에 같은 답을 한 사람이 전체 1%도 안 됐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변화다.

 소비자의 호응은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최근 3년간 각 인터넷서점 연 매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710억 원으로 업계 3위였던 알라딘은 지난해 2166억 원으로 교보문고 온라인을 누르고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연 매출 상승률은 22%로 매출 1위 예스24의 2배에 이른다.

 김성동 알라딘 웹기획마케팅팀장은 “딱히 계획적으로 ‘굿즈 마케팅 전략’을 쓴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굿즈는 모두 사내 디자인 직원들이 자체 제작한다. 생산 비용은 이벤트 해당 책을 낸 출판사와 절반씩 부담한다. 3년 전에 베개나 냄비받침을 내놓으면서는 ‘책 갖고 장난한다’고 욕먹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은품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회사 로고를 빼고 어설픈 제품은 내놓지 않는다. 시장에서 긍정적 신호가 오니 힘이 나서 더 신경 쓰게 되는 건 틀림없다.”

 알라딘 측에서는 “굿즈의 성공이 전체 실적을 높인 요인이라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고 하지만 굿즈 외에 다른 변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출판계와 인터넷서점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쟁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시장 판도를 바꿀 방법을 찾기 어려워졌다. 알라딘의 성공은 다른 업체들의 대응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스24와 교보문고는 한발 늦은 굿즈 마케팅보다는 기존 스테디셀러의 ‘리커버’에 힘을 쏟고 있다. 검증된 양서의 표지 디자인을 확 바꿔 한정판 디자인 상품처럼 판매하는 것. 예스24의 ‘리멤버북’, 교보문고의 ‘리커버K’, 알라딘의 ‘본투리드’ 시리즈가 모두 리커버 상품이다.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외형 디자인과 부속 상품에 치중하는 마케팅이 출판시장의 활로가 될 수는 없다. 텍스트 소비의 새 길을 찾지 못한다면 현재의 출판유통 양상은 길게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굿즈#알라딘#인터넷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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