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작이 된 홍기선의 ‘일급기밀’… 제작진 “내년 개봉은 남은 이 몫”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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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홍기선 감독의 감독 데뷔작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년) 촬영 현장. 가운데 모자를 눌러쓴 이가 30대 초반이던 홍기선 감독이다. 동아일보DB
고 홍기선 감독의 감독 데뷔작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년) 촬영 현장. 가운데 모자를 눌러쓴 이가 30대 초반이던 홍기선 감독이다. 동아일보DB
 “감독님이 생전에 영화 ‘일급기밀’을 내년 상반기엔 개봉하자고 말씀하셨어요. 힘들겠지만 그 약속 꼭 지키려 노력하겠습니다. 저세상에서 많이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18일 오후 안훈찬 미인픽쳐스 대표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15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홍기선 감독의 장지에서 나오던 길에 전화를 받은 그에게 뭔가를 묻는 게 염치없었다. 고인의 유작을 제작한 안 대표는 “12일 영화 촬영을 마치고 한 ‘쫑파티’ 때도 너무 건강해 보여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1987년 영화제작집단 ‘장산곶매’ 창립 멤버인 홍 감독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1989년)를 제작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신매매 불법 어선을 소재로 한 감독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년)부터 고인은 줄곧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성 짙은 작품을 선보였다.

 “감독님을 정의할 수 있는 한마디는 바로 ‘한결같다’예요. 진중하고 수줍음 많던 성격도 30여 년 전 처음 봤을 때부터 변함없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고요. 무엇보다 ‘진실을 향한 갈구’가 끊임이 없었습니다.”

 9일 촬영을 종료한 ‘일급기밀’도 그랬다. 이 작품은 2002년 차세대전투기 외압설을 폭로했던 조주형 전 공군 대령과 2009년 계룡대 군납문제를 알렸던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군 내부 비리로 고심하던 장교(김상경)가 방송국 여기자(김옥빈)의 도움을 얻어 진실을 규명한다는 줄거리. 안 대표는 “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뒤 지금까지 ‘일급기밀’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이번 영화야말로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갈 작품이 될 거란 기대가 컸다”며 안타까워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제작진 출연진 모두 ‘참 신기한 작품’이란 평이 많았습니다. 촬영 내내 날씨 같은 예상외 변수로 인한 촬영 연기가 한 번도 없었어요. 감독님도 ‘연출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워했습니다. 9월 23일 크랭크인 들어가기까지 워낙 고생해서 보상받은 거 같다며 웃어넘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이라 하늘도 도와줬나 싶습니다.”

 영화 ‘일급기밀’의 개봉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선장이 떠나간 영화의 후반 작업은 어쩌면 더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내심 감독님은 3, 4월엔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길 바랐다. 부담스럽지만 그 소망을 이뤄 주는 게 남은 이의 몫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 평생 영화에 바친 그의 열정도 은막에 피어나길. 삼가 조의를 표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홍기선#일급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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