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사회를 움직이는 건 계약서 아닌 善意”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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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베 철강이든 정부든 간에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전제하면 대규모 관료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부키·2010년) 》



 1990년대 중반 세계은행 주최의 ‘동아시아 경제 기적’을 주제로 한 회의가 일본에서 열렸다. ‘정부 개입이 경제성장에 큰 몫을 했다’는 경제학자들과 ‘정부 개입과 경제성장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맞섰다. 후자는 정부 관료도 이기적으로 움직이는 개인이므로 국가이기보다 자신의 권력과 위신을 확장하는 데 신경을 쓴다고 주장했다.

 청중석에서 이 논쟁을 듣던 한 일본 신사가 손을 들고 말을 꺼냈다. 당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철강회사였던 고베철강의 중역이었다. 그는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회사에서 30년간 일했는데도 회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회계나 마케팅 분야 출신의 다른 임원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겠지요. 그럼에도 이사회에서는 직원들이 올린 사업계획을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가정하고 직원들의 동기를 사사건건 의심하기만 한다면 회사는 마비되고 말 겁니다.”

 준법투쟁이라는 파업 수단이 있다. 단체행동이 금지된 공무원들이 민원인이 기다리는데도 점심시간을 엄수한다거나 생산라인 노동자들이 동시에 휴가를 낸다든지 하는 식이다. 규칙을 준수하는데도 생산량이 떨어지는 이유는 계약서나 규칙에 명시된 것보다 고용인이 평소에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완전히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면 기업이나 사회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일이 규칙을 정하지 않아도 사회가 굴러가는 건 선의나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동기 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완전히 이기적으로만 행동했을 때 사회가 어떻게 마비될 수 있는지 시민들은 보고 있다. 여전히 촛불을 드는 것은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선의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계약서#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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