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년을 맞아 어머니의 기억을 담은 소설 ‘달개비꽃 엄마’를 낸 소설가 한승원 씨. 그는 “지금껏 어머니에게 빚을 갚기 위해 살아왔고 이 글을 쓴 것도 그 빚을 갚는 것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씨의 아버지로 올 들어 큰 주목을 받았지만 한승원 씨(77)는 한국문학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다. 자식이 기쁜 소식을 전한 것 말고도 그에게 올해는 각별하다. 등단 50년을 맞아서다. 그의 이력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그보다 2년 전인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증스런 바다’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전남 장흥에서 지내는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증스런 바다’가 소실돼 지금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면서 “간척사업에 종사하는 인부 이야기”라고 간략한 내용을 들려줬다.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불태워 온 그는 최근 새 소설 ‘달개비꽃 엄마’(문학동네·사진)를 펴냈다. 그의 어머니 박귀심 여사에 대한 추억을 소설화한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많이 낳으셨는데 제가 유일하게 출세한 아들이었어요. 어머니가 쉰두 살에 과부가 된 후로 제가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어요. 그만큼 제가 어머니 사랑을 많이 받았고 어머니를 깊이 알았습니다. 어머니야말로 우주적인 뿌리라고 생각해요.”
소설에서 당차고 다부진 섬 처녀 점옹은 재취 자리라는 수군거림도 마다하지 않고 학교 선생인 한웅기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는 11남매가 있지만 집안의 유일한 기둥으로 형제들을 돌보는 것은 둘째아들 승원이다. 승원은 원고료와 교사 월급으로 집안을 건사해 간다. 그런 승원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사람이자 늘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이는 어머니다.
소설에서 승원이 문학공부를 하겠다고 서울에 올라가려 하자 아버지 웅기와 어머니 점옹이 크게 다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제 편이었습니다. 집에서 일찍이 제가 장가들어 분가하면 논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논을 팔아 공부하는 걸 지원해 줬어요.” 작가는 또 “어머니란 곧 생명력”이라면서 “새 소설에서 모성의 위대함을 예찬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자부심이 대단했다면서 한 씨는 “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이런 자식을 모두가 다 낳는 줄 아느냐’고 큰소리치며 작가 아들 자랑을 했는데, 아내는 그런 자식을 둘이나 낳았다”며 웃었다. 소설가인 딸 한강 씨와 아들 한동림 씨 얘기다. 그는 “신뢰하고 밀어주는 어머니의 힘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처럼, 아내도 아이들이 글 쓰겠다고 할 때 가로막지 않고 지지해줬다”고 돌아봤다.
딸이 할머니 이야기인 이 소설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강이가 내 작품을 읽으면 어딘가 영향을 받을까 싶어 읽지 않는다”며 “전혀 섭섭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서로 작품 활동으로 분주해 딸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는다면서도 아버지는 “내 품에서 벗어났으니 조언할 수도 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이자 후배 소설가인 딸의 앞날을 이렇게 내다봤다. “한 번 소재를 잡으면 굉장히 많이 공부하면서 집중해서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잘해 나가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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