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반려견, 주고받는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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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연일(延日) 고을 수령이 관아에 앉아 있는데 개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왔다. 아전들이 쫓아냈으나 동쪽으로 쫓으면 서쪽으로 돌아오고 저쪽으로 내보내면 이쪽으로 들어왔다. 쉬지 않고 쫓아내는데도 계속 돌아오니 수령이 이상하게 여겨 내쫓지 말고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였다. 개는 마당에 엎드리더니 수령을 올려다보며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짖었다. 수령이 말하였다. “개야, 네가 하소연할 것이 있나 본데 나는 못 알아듣겠구나. 군졸 둘을 내어줄 테니 함께 가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 개는 감사하다는 듯 무수히 절을 하였다. 마침내 군교(軍校) 두 사람에게 개를 따라가도록 하였다.

개는 문을 나와 앞장서 가면서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면 돌아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수십 리를 가자 큰 마을이 나타났다. 개는 곧바로 마을 뒤편 어떤 작은 집으로 들어갔는데 한 부인이 배가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군교가 말하였다. “개야, 네 주인을 누가 죽였는지 아느냐?” 개는 마을의 집들을 두루 들어가 사람 얼굴을 살피더니 다시 다른 마을로 달려갔다. 거기서 한 총각을 보더니 뛰어 들어가 옷을 물고 짖어댔다. 군교는 총각을 묶어 관아로 끌고 왔는데 개가 따라 들어와 성난 눈으로 노려보며 짖었다.

수령이 총각을 문초하자 총각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다 털어놓았다. 그 부인은 양반가 부인으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는데 친척도 없었다. 총각이 부인을 차지하고자 칼을 들고 들어가 위협하였는데 부인이 죽기로 항거하자 총각이 남이 알까 두려워 부인을 찌르고 그 흔적을 없앤 것이었다. 수령은 즉시 그 총각을 사형시키도록 하고 수의와 관을 갖추어 부인을 장사 지냈다. 장사가 끝나자 개가 따라서 죽어 무덤 곁에 묻어 주었다.

김약련(金若鍊·1730∼1802) 선생의 ‘의구전(義狗傳)’입니다. ‘의로운 개’라지만 오히려 사람보다도 낫습니다.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의 실태를 접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어 가는지…. 선생의 마무리입니다.

아아, 기이하구나. 어느 누가 이런 미물이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으랴? 이는 반드시 주인의 평소 행실이 능히 짐승까지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是必由主人平日之行有能感於物而然也).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의구전#김약련#강아지 공장#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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