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의 주변부를 맴도는 엑스트라 같은 남자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베개를 베다/윤성희 지음/276쪽·1만2000원/문학동네

윤성희 씨의 소설은 유머가 있다. 그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가벼운 웃음을 섞어놓는다.

가령 표제작 ‘베개를 베다’에서 주인공 남자는 헤어진 아내의 집을 봐주러 간다. 아내와 헤어지기 전 그는 아내에게 “난 엑스트라가 되어야겠어. 거기 가서 나보다 늙은 사람이 될래”라고 말했었다. 그는 엑스트라가 돼서 자기보다 늙은 사람이 되고 자기가 살지도 않았던 시대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아내의 집에서 베개를 베고 자던 남자가 일어나 보는 프로그램은 ‘짱구는 못 말려’다. 코믹한 TV 만화의 등장에 슬쩍 웃음이 나지만, 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내용이 짠하다. 만화에서 짱구의 부모는 과거로 타임 슬립해서 현재의 짱구를 알아보지 못한다. 남자는 사극 엑스트라를 하면서 종종 과거로 돌아가지만 거기서 그 자신은 없고 이름 없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짱구처럼, 엑스트라처럼, 헤어진 아내의 집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살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지만 현실의 그는 삶에서 부유하는 모습이다. 윤 씨는 이렇게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여러 겹으로 겹쳐 들려준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이틀’은 이틀에 걸쳐 회사를 나가지 않기로 한 사내의 이야기다. 회사를 쉬는 날 목련나무에 새삼 눈길을 주고, 우연히 만난 백발 할머니와 밭 가는 일도 한다. 생활에 묻혀 악착같이 살아온 사내가 생활의 ‘땡땡이’를 겪는 이틀은 홀가분하고 편안하다. 같이 이랑을 만들다 “내일은 출근해”라고 말하는 것으로 사내를 위로하는 할머니처럼, 작가는 그렇게 숨가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속내를 섬세하게 만져준다.

평론가 백지은 씨는 윤 씨의 소설에 대해 “일상을 의례화하는 그 세계는 마치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베개를 베다#윤성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