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장편 펴낸 소설가 윤대녕 “문학적 고집 벗어난 느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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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놓았던 원고를 들었다. 500매쯤 써놓고 덮은 것이다. 공통점이라고는 ‘상처’뿐인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소설가 윤대녕 씨(54)가 2005년 장편을 펴내고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 작가의 고백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은 커져” 장편 쓰기가 망설여졌다. 2년 전에야 다시 노트북을 켜고 수년 전 쓰다 접은 원고를 불러냈다. 새 장편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은 그렇게 시작됐다.

11년 만이다. 작가가 부담을 느낄 법하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곰삭은 시간이기도 하다. ‘피에로들의 집’을 세상에 보낸 작가를 최근 만났다. 그는 “2000년대 들어 가족공동체가 무너지고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 난민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주목해 왔다”며 창작 동기를 밝혔다. 작가가 보기에 이들 ‘도시 난민’은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이다. 소설 제목의 ‘피에로’가 가리키는 이들이기도 하다. 일도 사랑도 실패한 극작가 김명우,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불안정한 삶을 살아온 김현주, 어릴 적 어머니의 죽음 뒤 부유하며 지내온 박윤정, 연인이 목숨을 끊고 마음을 닫은 김윤태….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성북동 4층집 ‘아몬드하우스’에 밀어 넣고 서로 부딪치면서 마음의 상처를 내보이게 한다.

“문학적 고집이 있었는데…벗어난 느낌이다”라고 윤 씨는 털어놨다. 그는 1990년대의 대표작가다. ‘은어낚시통신’을 비롯한 그의 소설들에는 ‘존재의 시원(始原)으로의 회귀’라는 유명한 평이 상징처럼 함께 했다. 작가 역시 존재론적 고찰이라는 주제 의식을 오랫동안 붙잡아 왔다. 그랬던 그의 새 작품은 전과 다르게 ‘리얼하다’. 앞선 작품들보다 빨리 읽힌다. 특유의 시적인 문장 대신 문체가 담백해지기도 했지만, 연예인의 성 접대, 학생폭력 같은 이슈들이 등장해 사회 체감을 높인다. 이 변화에 대해 그는 “스스로 기성세대가 됐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성세대라는 인식이 어떻게 그를 움직였을까.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해 온 지 9년 째 접어들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그는 현실감각이 생겼다. 자식뻘 학생들을 보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비추게 됐다. 한참 원고를 쓸 때 세월호 참사가 났고, 그는 한동안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이 짓눌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김윤태의 발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기성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이 때로 무차별적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걸까요? 더군다나 기득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난폭한 방식으로 자기 보상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 같은데도 말예요.”

연구년을 마치고 개강을 맞아 학생들 앞에서 다시 문학을 가르치게 된 그는 “문학에 환호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지만 그렇다 해도 삶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존속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다시 또 쓸 수밖에 없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는 말로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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