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영웅 변절에 美 사회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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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롤 모델이 통탄과 환멸의 대상이 됐다”
‘파수꾼’ 15일 전 세계 동시 출간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의 의로운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55년 만의 신작 ‘파수꾼’에서 인종주의자로 묘사된다. 외신의 서평을 통해 내용이 알려지자 ‘배신당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의 의로운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55년 만의 신작 ‘파수꾼’에서 인종주의자로 묘사된다. 외신의 서평을 통해 내용이 알려지자 ‘배신당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파수꾼’ 국내판 표지.
‘파수꾼’ 국내판 표지.
미국 시간 14일(한국 시간 15일) 전 세계 동시 출간을 앞둔 ‘앵무새 죽이기’(정확히는 ‘흉내지빠귀 죽이기’)의 55년 만의 속편 ‘파수꾼’(원제 ‘Go Set a Watchman’)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앵무새 죽이기’에서 미국적 양심의 파수꾼과 같은 존재로 그려졌던 정의로운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속편에서는 편견덩어리 인종차별주의자로 변신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퍼 리(89)가 ‘앵무새 죽이기’를 쓰기 2년 전에 먼저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뒤를 다룬 작품. 전작에서 6세 말괄량이였던 진 루이스 핀치(별명 스카우트)는 20대 중반의 처녀가 돼 뉴욕에서 생활하다가 고향 앨라배마 주 메이컴을 방문한다. 그녀는 거기서 자신의 어린 시절 영웅인 아버지 애티커스가 70대 노인이 되면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애티커스는 심지어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회합에 참여하고 인종차별제도 폐지를 반대하는가 하면 “깜둥이가 차떼기로 우리 학교, 우리 교회, 우리 극장에 오면 좋겠느냐”고 스카우트에게 따져 묻는 편견덩어리로 바뀌어 있다.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남성을 애티커스가 변호하는 ‘앵무새 죽이기’의 주요 내용은 ‘파수꾼’에서는 지나가는 에피소드로만 묘사된다.

‘파수꾼’의 원고를 발간에 앞서 입수한 미국 언론은 대체로 비판적인 서평을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자녀들의 롤 모델이었던 애티커스가 ‘파수꾼’에서 통탄과 환멸의 대상이 됐다”며 “‘파수꾼’ 같은 습작에서 ‘앵무새 죽이기’ 같은 걸작을 끌어낸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 편집자 테레즈 폰 호호프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파수꾼’을 읽는 것은 큰 실수”라는 요지의 서평을 냈다.

CNN방송도 ‘고전작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접한 독자들의 트위터 반응을 전했다. 한 독자는 “애티커스 핀치를 인종주의자로 만든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E.T.’ 속편에서 ET가 (주인공인 친구) 엘리엇의 얼굴에 주먹질하고 용돈을 빼앗게 하는 것과 같다”고 분노했다. 또 다른 독자는 “8학년(한국의 중2) 때부터 상상 속의 남편으로 삼아온 사람이 인종주의자가 되다니 내 청소년 시절 전체가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고 경악했다. 반면 “하퍼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복잡하고 가슴 아픈 곳임을 일깨워줬다” “애티커스가 인종주의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순 없지만 하퍼는 우리 모두를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해줬다” 등의 긍정적 반응도 있었다.

‘파수꾼’은 미국에서 초판으로 200만 부가 발행된다. 국내에서 이 책을 출간하는 열린책들은 초판을 10만 부 찍기로 했다. 초판 발행 부수가 2000부 정도인 국내 출판계의 현황을 생각하면 기록적이다. 외신을 통해 이미 ‘파수꾼’ 내용이 알려지고 있지만, 열린책들 관계자는 “계약상 문제로 출간 전까지 전체 줄거리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열린책들과 계약을 맺은 영국의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유출을 우려해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원고를 직접 들고 내한했다. 하퍼콜린스는 한국 출판사에 금고를 설치해 원고를 보관할 것과 보안 각서를 쓴 사람만 열람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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