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게이밍 테이블의 조율사를 만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13일 06시 40분


1. 강원랜드의 13년차 딜러인 테이블영업팀의 지여진 대리가 카지노의 주요 게임 중 하나인 룰렛에 볼을 스핀하고 있다.(맨 왼쪽) 2.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바카라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파라다이스 워커힐점의 12년차 최연정 대리. 4살짜리 아들이 있는 결혼 6년째 주부 딜러다. (가운데) 3. 그랜드코리아레저의 김려은 과장은 14년차로 현재 딜러를 거쳐 플로어 퍼슨을 맡고 있다. 대학에서 도박중독 관련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학구파’이기도 하다.(맨 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강원랜드
1. 강원랜드의 13년차 딜러인 테이블영업팀의 지여진 대리가 카지노의 주요 게임 중 하나인 룰렛에 볼을 스핀하고 있다.(맨 왼쪽) 2.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바카라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파라다이스 워커힐점의 12년차 최연정 대리. 4살짜리 아들이 있는 결혼 6년째 주부 딜러다. (가운데) 3. 그랜드코리아레저의 김려은 과장은 14년차로 현재 딜러를 거쳐 플로어 퍼슨을 맡고 있다. 대학에서 도박중독 관련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학구파’이기도 하다.(맨 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강원랜드
■ 주말기획|카지노 딜러의 세계

“영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긴장감은 잊을 수 없어요”


복합리조트를 통해 카지노가 관광산업의 전략분야로 떠오르면서 핵심 인력인 딜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급여수준과 복지혜택이 좋은 유망직종으로 알려지면서 신입 딜러 모집에 50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 비해 정작 우리가 딜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국내에는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강원랜드와 외국인 전용업장을 포함해 14개 업체 17개의 카지노 영업장이 있다. 이중 매출액 기준으로 빅3는 강원랜드, 파라다이스, 그랜드코리아레저(GKL)다. 이들 세 회사를 대표하는 경력 10년 이상의 딜러를 만나 그들의 직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강원랜드 지여진 대리
현장 실습 때 실제베팅이 주는 긴장감 경험
화려함 이면엔 육체적 피로·스트레스 있어

● 파라다이스 워커힐 최연정 대리
육아휴직·교대근무 등 급여·복지후생 좋아
계속 서 있는 근무…‘딜러반점’도 생겼어요

● GKL 김려은 과장
카드·칩스 스킬은 기본…운영 능력도 중요
첫 현장 투입날 고객이 화내도 테이블 지켜



Clip-딜러·플로어퍼슨·핏보스·시프트매니저

딜러 테이블 4∼6개를 묶어 ‘스테이션’이라고 하는데 이를 감독하는 사람이 플로어 퍼슨(Floor Person)이다. 각 테이블의 이상유무, 고객의 평균 베팅금액 판단, 딜러의 실수 체크 등을 맡는다. 스테이션은 다시 4∼6개가 하나의 핏(Pit)을 구성하는데, 이 핏을 담당하는 사람이 핏보스(Pit Boss)다. 많게는 40개 가까운 테이블의 게임 상황을 총괄하고 딜러와 플로어 퍼슨의 업무를 감독한다. 핏보스 위에는 전체 운영을 관장하는 시프트매니저(Shift Manager)가 있다.

● “빠른 판단력과 계산능력 필수”


GKL 김려은(33) 과장은 14년차로 딜러를 거쳐 플로어 퍼슨을 맡고 있다. 대학 전공은 웹디자인. 졸업을 앞두고 다른 길을 찾다가 2001년 입문하게 됐다. 김 과장과 달리 파라다이스 워커힐점의 최연정(34· 12년차) 대리와 강원랜드 지여진(33· 13년차) 대리는 각각 대학에서 호텔경영과 카지노관광경영을 공부했다. 두 사람 모두 재학 중에 학업과 병행해 회사 교육원에서 실습을 받으며 현장을 익혔다. 지 대리는 “처음 현장 실습을 할 때 실제 베팅이 주는 긴장된 분위기와 다양한 고객의 모습이 준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카지노 영업장에서 만나는 딜러는 영화나 드라마 속 모습만큼 화려하지 않다. 카드를 만지는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이나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극적인 동작이 없다. 김 과장은 “카드와 칩스(chips)를 다루는 스킬도 필수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테이블 게임을 매끄럽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고 강조했다. 물 흐르듯 유연하면서 상황에 맞춰 완급을 자연스럽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게임 룰과 테이블마다 천차만별인 베팅상한, 디퍼런스(최저베팅과 최고베팅 차이) 등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한다. 고객별로 페이(정산)를 할 때도 착오가 없어야 한다. 특히 국내 딜러들은 외국과 달리 계산기를 거의 쓰지 않고 암산으로 칩스를 확인하고 페이하는 것이 관행이자 숙련도에 대한 자부심이어서 정확한 계산능력은 필수다.

● 급여수준 복지 좋지만, 정규 딜러 되기까지 2년3개월 걸려

업무 난이도가 높다 보니 정식 딜러가 되는 데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직영교육원에서 3개월 정도 교육 받고 현장서 6개월간 실습생으로 활동한 뒤, 6개월 인턴, 1년 계약직을 거쳐야 정규 딜러가 될 수 있다. 카지노에서 운영하는 게임은 9가지지만 교육에서는 고객이 많고 룰 숙지와 게임 운용능력이 요구되는 블랙잭, 바카라, 룰렛을 중점 지도한다. 한 종목을 제대로 운영하는 데만 7∼8개월이 걸리고 필수 3종목을 능숙하게 하는 데는 2년 넘게 걸린다.

교육과정이 긴 만큼 정규 딜러의 급여수준은 꽤 높다. 강원랜드와 파라다이스는 초임이 3500만원 안팎. GKL은 수당과 경영평가 상여금을 제외하고 약 2800만원이다. 복리후생도 잘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직원 육아휴직. GKL은 3년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강원랜드는 산전·산후 90일 휴가와 만8세 이하 자녀 1명에 대해 1년 휴직을 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도 2년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결혼 6년차 주부로 4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파라다이스 최연정 대리는 “육아휴직도 길고 근무도 오전, 낮, 밤으로 구분해 2개월마다 교대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좋다”고 말했다.

●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 없죠”

카지노가 돈을 잃고 따는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공간이다 보니 딜러가 감내해야 하는 감정의 강도는 무척 강하다. “세상에 돈 잃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죠. 하지만 그런 감정을 그대로 퍼부으면 힘들어요. 초년병 때 테이블에서 울기도 했어요.” 강원랜드 지여진 대리는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확신하다가도 그런 상황을 겪을 때 후회를 자주 했다고 한다. 외국인 고객이 대부분인 GKL이나 파라다이스도 마찬가지다. GKL 김려은 과장은 처음 현장에 투입됐을 때 “고객이 마구 소리를 지르거나 컵을 던지며 화를 내는데도 테이블을 지켜야해서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파라다이스 최연정 대리는 “테이블에서 육두문자를 하도 듣다 보니 외국어 욕은 어지간한 것은 다 알 정도”라고 웃었다.

감정노동의 스트레스와 함께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의외로 육체적 피로였다. 크게 움직이지 않고 테이블에서 카드 돌리고 칩스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착각이었다. 요즘은 그나마 앉아서 게임을 관리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서서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지 대리는 “허리디스크나 다리 부정맥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흔하고 계속 카드와 칩스를 만지다 보니 어깨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초창기에는 카페트 먼지로 인한 비염도 겪었다”고 소개했다.

최 대리가 소개한 ‘딜러반점’은 그런 육체적 고달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계속 서있다 보면 힘들어서 테이블에 나도 모르게 몸을 기대게 돼요. 나중에 일을 끝나고 보면 엉덩이 골반뼈 부근이 퍼렇게 멍이 들어있어요. 그걸 우리끼리 몽고반점에 빗대어 ‘딜러반점’이라고 부르죠.”

● “화려한 것 보고 지원하면 후회”

한국 딜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강원랜드 최재현 차장은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 차장은 “스킬 습득이 빠르고 정확한데다 테이블 운영의 핵심인 계산능력이 탁월하고, 판단력도 남다르다”며 “룰렛은 베팅에 따른 배수가 많고 복잡해 힘든데 이를 한꺼번에 계산하는 것은 한국 딜러뿐이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만난 딜러들 모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대학에서 강의도 했던 GKL 김려은 과장은 현재 경기대학교에서 도박중독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두 사람도 앞으로 강단에서 후배를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딜러를 꿈꾸는 미래의 후배들에 대한 기대와 걱정도 남달랐다. 강원랜드 지여진 대리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 보지 말고 육체적인 고달픔을 견딜 수 있는지, 현금을 다루는 현장의 긴장과 책임감, 군기가 센 조직문화 등이 맞는지 잘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김재범 전문기자 oldfield@donga.com 트위터 @kobauki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