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보내는 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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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희망의 미소가 되어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제 교황님을 만나 뵐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스무 살 때 사랑하던 사람을 기다릴 때처럼 가슴이 자꾸 두근거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 종교를 초월해서 교황님이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한국 땅에 첫발을 딛고 지으시는 그 환한 미소가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의 미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교황님께서 왜 이 땅을 찾아오시는 것일까, 다시 곰곰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랑이 가장 결핍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국회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깊은 바닷속에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아픔을 국민과 국가가 진정으로 깊게 나누지 못한 결과입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청년들 또한 집단 가혹행위에 주검이 되는 절망의 독버섯을 껴안고 있습니다. 이 또한 ‘나’를 생각하기 이전에 ‘너’를 생각하는 사랑과 배려의 정신이 결핍돼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그동안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만 구현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교황님께서 한 마약중독자의 발을 정성껏 씻기시고 그 발에 키스하는 장면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나중에 그 마약중독자에게 전화까지 하셔서 “어떻게 지내느냐? 나를 기억하느냐?”고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교황님께서 내 사진을 방에 걸어놓아도 되겠느냐고 직접 전화로 물으셨다. 교황님을 만난 일이 인생의 전기가 됐으며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그 마약중독자의 말에 저는 교황님이 얼마나 사랑이 깊으신 분이신 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제 대한민국도 사랑이 흐르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교황님의 방한이 평화의 한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미움과 증오, 질시와 반목 속에서 분열과 절망을 딛고 스스로 희망이 되어 일어서게 해주세요.

교황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시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까닭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인간을 사랑의 인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 것처럼 교황님 또한 우리를 사랑의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국가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정신이 곳곳에 무너진 대한민국을 구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눈물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더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손을 잡고 울어야 합니다. 이기와 부정과 부패에 마음을 빼앗겨 이웃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의 눈물을 잃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원인으로 젊은이 200여 명이 사망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 5주년 미사에서 교황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아첨하고 돈 버는 데 골몰하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신경 쓰느라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교황님! 지금 우리도 그렇습니다. 남의 자식은 불행을 당해도 내 자식만 불행을 당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울지 않습니다. 내가 잘살기 위해 남이 잘사는 것을 미워하고 안타까워합니다. 교황님! 이번에 한국에 오시면 이런 우리로 하여금 더욱 울게 해주세요.

몇 해 전 저는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 있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과 베드로가 처음 만나던 장면을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황금의 돈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랑의 빛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화해와 통일의 빛이 비치게 해주십시오. 남북이 서로 마음을 열어 한민족 한나라로 평화를 이루게 해주십시오. 북한의 인권을 위해 진정 아파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교황님이 전하시는 ‘행복 10계명’을 다시 읽어봅니다. 평범하지만 어렵고, 어렵지만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인정하고 관대해지라’고 하신 말씀은 평생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순교의 나라이자 분단의 나라에 오시는 교황님을 위해 제 자작시 ‘작은 기도’ 한 편을 바칩니다.

‘누구나 사랑 때문에/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누구나 그리운 사립문을 열고/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하늘의 별과 바람과/땅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그 침묵의 눈물을 생각하면서/우리의 작은 빈 손 위에/푸른 햇살이 내려와 앉게 하소서/가난한 자마다 은방울꽃으로 피어나/우리나라 온 들녘을 덮게 하시고/진실을 은폐하는 일보다/더 큰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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