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불 밝히는 연등… 추모와 위로의 염원 오롯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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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알고 있어요. 너무 놀랍고 슬픈 일이에요. 많은 분들이 꼭 살아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랍니다.”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난 한 베트남 소녀는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들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이 소녀는 “불교 국가에서 성장해 넋을 위로하고 생명의 소생을 염원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도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청계천 주변의 전통등 전시회에는 오색등뿐 아니라 백등 150개가 설치돼 있다. 불교에서 백등을 켜는 것은 넋을 위로하는 의미다. 하루 전 열린 점등식에서도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소속된 종단 책임자들이 참석해 노란 리본을 달고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

연등회 봉축위원회는 26, 27일 동국대에서 조계사까지 이어지는 연등 행사를 예정대로 치르되 축제가 아닌 추모의 장으로 진행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이 행렬에서는 대형 백등과 생명을 상징하는 홍등에 이어 스님 300여 명이 백등을 켤 계획이다. 그 뒤 사찰과 불교 단체들도 백등과 다른 등의 순서로 행진한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연등행사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부산과 울산 등 일부 지역은 행사를 취소했고, 다른 지역들은 추모의 뜻을 담아 행사를 축소하기로 했다.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연등회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홈페이지에 “중요무형문화재 122호인 연등회는 천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전통이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실시해 온 우리 민족의 한과 흥이 함께 서린 문화재이며 의례이다. 행복할 때는 축제이지만 올해 같은 힘든 시기에는 넋을 달래고 혼을 기리는 의례 역할을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사실상 대한민국이 국상(國喪)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실종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이제 남은 가족들도 생각해야 할 때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유족과 생존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말 그대로 종교의 힘이 필요할 때다. 수많은 연등에 이 같은 염원이 담기길 바란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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