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만고만한 일상을 응시해 펼쳐놓은 시대의 초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부부의 초상/김원우 지음/480쪽·1만6000원/강

소설가 김원우의 이 신작은 지역신문 문화부 소속 ‘안 기자’가 30년 넘게 알고 지낸 한 부부에 대한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안 기자는 문화부 신출내기 시절 외부 칼럼 기고자인 시인 고은미를, 미술 면을 담당하는 고참 기자가 돼서는 중견화가 노옥배를 알게 된다. 뒤늦게 두 사람이 부부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속물근성 없이 솔직담백한 삶을 살아가는 이 부부에게 매료되지만 시간의 파도 속에 그 미덕도 서서히 부식돼 간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책장이 빨리 넘어가야 맛’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에겐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김원우의 소설은 거대 서사의 힘에 기대지 않는 데다,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입말 그대로 옮긴 대화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운 체로 서사를 걸러낸 자리에 작가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응시해 길어낸 물감으로 시대의 초상을 펼쳐놓는다.

신문기자인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인간 군상의 품격은 사실 냉소를 피하기 힘든 수준이다. “제 생업이나 직업의 본색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유별스레 몸에다 치렁치렁 처바르고, 내가 누구라는 명함을 제멋대로 드러내는 행동거지 일체에 그 소위 ‘촌티’가 묻어나는데, 그 밑바닥에는 자기 바탕과는 겉도는 가식으로서의 가문·학벌·재력·오기·성취욕·자만심 같은 것이 징그러운 흉터처럼 연방 남의 시선을 붙들어 매고서는 잠시라도 놓아주지 않는다.”(76쪽)

행간마다 말의 홍수 속에서 말을 쉽게 혹사하고 허투루 사용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해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주인공의 일터인 신문사도 비켜갈 수 없다. “모든 아첨이나 칭찬은 토씨 하나도 안 바꾸고 똑같은 말의 반복인데도 물리지 않는다는 속성을 ‘작년에 왔던 각설이’ 같은 신문과 치매 들린 독자가 함께 누리고,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종목들이 신문을 매체로 삼는 문화 내지는 예술 제반임은 매일 보는 바와 같다.”(159쪽)

작가가 그리려는 부부의 초상은 곧 시대의 초상일 터. 이 정밀한 초상화를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자니 어느새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할 말 많은 시대, 우리는 내뱉는 ‘말의 값’을 하며 사는 걸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부부의 초상#김원우#냉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