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만난 韓日 커플, 알콩달콩 연인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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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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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좋은 하루’ ★★★★

연극 ‘좋은 하루’에서 유키와 현우의 키스를 응원하는 귀신들. 바나나문 프로젝트 제공
연극 ‘좋은 하루’에서 유키와 현우의 키스를 응원하는 귀신들. 바나나문 프로젝트 제공
대학 시절 호감을 가졌지만 그 이상 진전이 없었던 남자와 여자. ‘귀신의 집’을 만드는 기획자 현우(송재룡, 박성현)와 프리랜서 여행기자인 일본인 유키(강유미)는 14년 뒤 단양에서 재회한다.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신작 연극 ‘좋은 하루’(이시원 작·최원종 연출)는 한없이 외로운 30대 후반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극은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엉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유키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우는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유키의 일본어가 당황스럽다. 정체를 드러낸 유키는 현우가 놀랄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낼 줄 모르는 현우와 달리 현우의 언어를 익힌 유키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다.

이들이 회상하는 과거는 아련하고 정겹다. 예전처럼 오리배를 함께 타고, 볼펜을 맞잡고 귀신을 부른다는 주문 ‘분신사바’를 하면서 추억을 하나둘씩 호출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남자는 그 결핍을 채우려고 귀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고 유키는 쓸쓸함을 애써 감추려는 현우에게 입을 맞추지만 그뿐이다.

일본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유키는 현우에게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고… 여전히 한국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 감정… 지친다.”

현우가 기획한 ‘귀신의 집’이 문을 여는 날. 유키가 불현듯 귀신의 집을 찾아온다. 그곳은 현우의 내면의 동굴 같은 곳이다. 현우가 과거에 녹음한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10여 년 전 각자의 언어로 고백했기에 상대가 알 수 없었던 ‘알콩달콩 살자’ ‘여기 남아서 너와 다른 삶을 시작해 보고 싶어’라는 말을 비로소 공유하지만 현우는 마지막 순간 끝내 단 한마디를 못한다.

이 연극은 수줍고 서툴렀던 옛 시절을 들춰 보는 것 같다. 박성현과 재일교포 출신인 강유미는 극 중 인물을 체화한 듯한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고 일상적이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대사는 에피소드에 힘을 더했다. 신파로 흐를 법한 대목에서도 단호하게 끊고 유쾌한 리듬으로 금세 돌아가면서 탄성을 끝까지 유지했다. 2월 13일∼3월 3일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에서 공연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좋은 하루#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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