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누구나 가수다

  • Array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개인 앨범 저렴하게 만들어주는 ‘브리즈 뮤직’ 음악 기부 스토리

“오늘 처음 온 학생들이 집에 안 가겠다고 그러는데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만큼 편한 곳은 없나보다.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행운동 ‘브리즈 뮤직’에서 유환희 씨(오른쪽)와 왕두호 백영남 씨가 녹음작업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오늘 처음 온 학생들이 집에 안 가겠다고 그러는데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기만큼 편한 곳은 없나보다.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행운동 ‘브리즈 뮤직’에서 유환희 씨(오른쪽)와 왕두호 백영남 씨가 녹음작업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큰길에서 샛길로 걸어 들어가야 겨우 눈에 띄는 허름한 3층 건물. 이곳 지하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아지트가 있다. 1층 카센터에서 쌓아둔 거대한 타이어 ‘산’ 때문에 입구를 찾기도 어렵지만 녹음실 벽을 가득 채운 방음 스펀지의 굴곡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의 10평(약 33m²)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 ‘브리즈 뮤직’. 이곳의 터줏대감인 왕두호 씨(27)와 백영남 씨(26)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누구보다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남자의 이력서

“저는 사람들이 모두 음악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밖에 없었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부모님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웠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완주하는 게 꿈이었어요. 스쿨밴드도 했어요. 베이스를 쳤죠.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2007년, 굳이 따지자면 삼수생과 같은 나이였죠. 대학에서도 밴드를 했어요. 그런데 순탄치 않았어요. 저보다 어린 선배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거든요. 결국 1년이 지난 뒤 선배들한테 ‘해고 통보’를 받았죠.

허무했어요. 후배들을 가르치려고 커리큘럼까지 다 준비해뒀었거든요. 잘리고 나니 갈 데가 없었어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느라 과 친구도 없었고요. 그래도 준비해놓은 교육과정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어서, 제가 10년 정도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모아 레슨을 해보기로 했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레슨을 받은 뒤 ‘평소 꿈꿔왔던 직장인 밴드를 시작하게 됐다’며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모임이 계속되니 안정된 공간이 필요했어요. 시간당 2만∼3만 원씩 연습실 이용료를 내기는 아깝더라고요. 관악구 봉천동 근처에 있던 연습실을 하나 빌리게 됐어요.

아, 거기서 영남이를 처음 만났어요. 애초에 연습실을 운영하던 사람이 이 친구였거든요.”

“저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옆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지켜보면서 배웠죠. 물론 집안에서는 제가 음악 하는 걸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노래를 못해도, 음악을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심각한 음치라면, 과학과 기술의 힘이라도 빌리면 된다. 잘해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음악이지 않은가. 16일 오후 ‘브리즈 뮤직’ 스튜디오에서MR(반주) 작업을 하는 왕두호 씨와 백영남 씨(왼쪽).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노래를 못해도, 음악을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심각한 음치라면, 과학과 기술의 힘이라도 빌리면 된다. 잘해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음악이지 않은가. 16일 오후 ‘브리즈 뮤직’ 스튜디오에서MR(반주) 작업을 하는 왕두호 씨와 백영남 씨(왼쪽).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감동시키는 음악’ 의기투합 두 남자, 한 곡에 35만원이면 OK ▼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전자기타가 사고 싶었어요.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오전 5시에 일어나 몰래 일을 하러 나갔죠. 60만 원을 모아서 드디어 유명 브랜드 기타를 장만했어요. 그런데 한두 번이나 기타를 잡았을까. 가뜩이나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절 보며 속상해하신 아버지께서 제 기타를 부숴버리셨어요. 저를 때리지는 못하고 기타에 화를 푸신 거죠.

그날로 집을 나왔어요. 고향인 전주를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죠. 아, 그래도 부모님과는 잘 지내요. 아무튼, 그때는 여관방을 전전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오전 8시에 출근, 오후 3시에 퇴근을 한 다음 다시 오후 5시에 출근, 밤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죠. 그래도 월급 50만 원을 모아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3만 원짜리 방을 마련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밴드를 하는 형들과 만나 같이 활동을 했어요. 당시 형들은 밴드 장비는 있었는데 그걸 보관하고 합주할 만한 공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연습실을 마련하기로 했죠. 제가 연습실 관리를 맡았어요. 방이 여러 개 있으니까 다른 팀에 빌려주면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기도 해서 저한테도 이득이 될 것 같았죠. 그 와중에 작곡가 형(지금은 유명 기획사 작곡가로 활동)을 만나 같이 앨범작업을 해보기도 했어요. 명훈이 형(‘울랄라세션’ 멤버), 치환이 형(‘디 에이디’ 멤버·옛 ‘악동클럽’ 소속)도 그때 만났죠.

두호 형요? 그때는 누군지도 잘 몰랐죠. 그냥 저희 연습실을 월세 내고 쓰던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두 개의 길이 하나로

두호 씨는 처음엔 영남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습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깔끔쟁이 두호 씨에게 영남 씨의 연습실은 ‘완전 이상한 곳’이었다. 청소를 잘 안 해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고, 페인트칠도 안 해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끔은 벌레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두호 씨는 영남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한데, 전기 공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페인트칠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영남 씨는 의외로 순순히 공사를 해 줬다.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얼마 뒤 건물주가 연습실로 찾아왔다. 주인 아주머니는 “연습실 전체 월세가 몇 달째 밀렸다”라면서 “월세를 40만 원 더 내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두호 씨는 덜컥 걱정이 됐다. ‘나 때문에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다가 돈이 부족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때 영남 씨는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얼굴을 크게 다친 후였다. 치료비로만 수백만 원이 들어갔다. 월세는커녕 생활비가 부족한데도 없는 돈을 들여 연습실을 재단장하고 나자 돈이 더 부족해졌다.

건물주와의 협상은 실패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연습실을 찾아 나섰다. 두호 씨는 아예 새로운 연습실을 꾸미기로 했다. 행운동의 한 상가 지하실(지금의 브리즈뮤직 위치)을 어렵게 찾아내 입주를 결정했다. 그런데 영남 씨가 계속 눈에 밟혔다. 결국 그를 데려와 방 두 개 중 하나를 내줬다. 월세는 받지 않았다.

두어 달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칭찬하기 좋아하는 성격, 돈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가치관….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음악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다른 곳에서 출발한 두 남자의 길이 행운동의 한 지하실에서 하나로 합쳐진 순간이었다. 2011년 10월이었다.

제작비 80% 감량의 비결

‘브리즈 뮤직’은 한 곡당 35만∼50만 원에 ‘나만의 음반’을 만들어 준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환영이다. 두호 씨와 영남 씨가 모든 제작 과정을 함께 진행해준다. 여기서 정식 디지털 앨범을 발매하면 주요 음원서비스 사이트에도 등록되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도 된다. 제작비가 싸다고 품질까지 저렴한 것은 물론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등 유명 가수의 앨범 제작에 참여한 일류 세션맨들이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보통 일류 세션맨들에겐 한 곡당 기본으로 30만 원 이상을 줘야 한다. 사실 곡을 연습해오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런데 브리즈 뮤직은 여기서 더 가격을 깎았다. 5만 원으로 세션 문제를 해결했다(지금은 조금 더 올랐음).

두호 씨가 처음으로 섭외를 시도했던 기타 연주가에게 세션비 5만 원을 제안했을 때 영남 씨는 그를 말리려고 했다.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됐다. 그래도 두호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e메일을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와 자신들이 음악을 시작한 이유, 나중에 성공하면 꼭 보답하겠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그러자 답장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참가하는 걸 비밀로 해준다면 도와주겠다”는 답변이었다(낮은 가격에 세션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시장 질서’에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건반도, 바이올린도 같은 식으로 도움을 받았다.

두호 씨는 말한다. “사실 그분들은 그냥 재능을 기부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게 보기 좋아 도와주시는 거죠. 제작비에 비해 높은 품질의 곡이 나오는 것도 그분들 덕이에요. 사실 5만 원은 수고비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죠. 너무 고맙고 죄송하죠. 그래서요, 얼마 전에 세션비를 7만 원으로 올려드렸어요(웃음).”

지난 연말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선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 아이 10여 명과 함께 캐럴 앨범을 제작한 것이다. 이 앨범을 만들 때는 자금 사정상 제작비를 최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두호 씨와 영남 씨의 연말 수입 전액을 투자했음에도 CD를 찍어낼 돈이 없었다. 그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보컬트레이너 박지은 씨, 아카펠라 그룹 ‘M-SEED’, 서울메트로, 서울대 자원봉사단 프로네시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아이들의 노래 연습과 앨범 표지 디자인, 홍보, 연주, 판매를 도왔다. 모두 139만 원의 돈이 모였다. 물론 고스란히, 전부 기부했다.

“힙합이 뭐꼬?”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브리즈 뮤직을 찾는다. 프러포즈용, 결혼식 축가용 앨범을 만들고 싶거나 못 이룬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두호 씨에게 레슨을 받은 동호회 사람들, 영남 씨가 예전에 만났던 음악계 선배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놀러온다. 그중에서도 요즘 두 사람이 정을 많이 주는 사람은 유환희 씨(22·여)와 박성진 씨(26)다.

“저희는 앨범을 작업하기 전에 2, 3시간씩, 일종의 상담을 하거든요. 의뢰인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노래를 만들고 싶은 건지 잘 알아야 그 사람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환희가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고 얼마 전에는 남자친구와 안 좋게 헤어졌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환희 씨는 실용음악과를 나왔지만 음악을 직업으로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안사정이 넉넉지 않아 “현실을 생각하라”는 충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졸업 후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서 스티커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브리즈 뮤직을 찾았다.

두호 씨와 영남 씨는 환희 씨에게 무료로 프로듀싱을 가르쳐주고 있다. 물론 환희 씨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앨범을 판매할 때 지하철 공연에 참가해 미국 팝 가수 비욘세의 ‘리슨(Listen)’을 불러 큰 호응을 얻는 데 기여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노래를 듣다가 지갑을 탈탈 털어 5만 원을 기부하고 갔다고 하니, 제 역할은 한 셈이다.

성진 씨는 스물네 살 때 힙합 가수 에픽하이와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에 ‘꽂혀’ 힙합을 하겠다고 고향인 경남 함안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왔다. 서울에 오기 위해 집에서 기르던 소까지 팔았다. 은평구의 한 마트에서 일하며 음반 제작사를 찾던 중 브리즈 뮤직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배우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스스로 “나는 100점 만점에 10점”이라며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노래 스승인 영남 씨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을 던지는 열혈 학생이기도 하다.

“성진 씨가 처음 찾아왔던 날을 잊지 못해요. 랩을 시켰는데 글쎄, 심각한 박치였어요. 다짜고짜 ‘힙합이 뭐꼬∼’ 하면서 랩을 하는데 처음에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이런 콘셉트는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개그와 진지함의 묘한 경계선에 서 있는 분이에요.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백영남) 성진 씨는 16일, 드디어 첫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다.

브리즈 뮤직은 한 달에 겨우 1만7000원의 저작권 수입을 올린다. 많을 때도 3만 원이 넘지 않는다. 다른 수익을 합쳐도 매달 적자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다. 어떤 사람은 “너희가 음악을 너무 싸게 만들면 사람들이 음악의 가치를 그 정도로밖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두호 씨는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감성이 있죠. 노래는 그 감성을 저장하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저장해주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아주는 것이 저희의 목표예요. 거창하게 말하면 ‘사람들 속에 숨겨진 베토벤, 김광석을 우리가 찾아내 음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거죠.”
▼ ‘브리즈 뮤직’이 제작한 음반 4선 ▼

상록보육원 캐럴 앨범=오예! 크리스마스

“우리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어떨까요?”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 회의에서 뜬금없는 제안이 나왔다. 그 결과가 바로 ‘오예! 크리스마스’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아이들이 부른 여섯 곡의 캐럴이 담겨 있다. 앨범 재킷은 천혜정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앨범 1000장 중 300장은 아직도 브리즈 뮤직 창고에 있다.


윤기수=사랑하는 딸에게


누나의 결혼식 때 부모님이 써서 건네줬다는 편지를 가사로 해 만든 곡이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소중하고 예쁜 엄마의 딸’ ‘사람은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더 아름답다’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왕두호 씨는 “모든 스태프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 애착이 남다른 곡”이라고 말했다.


펑크 스타=파이어 온 더 스테이지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인 ‘펑크 스타’ 한상혁 씨(35)는 원래 가수가 꿈이었다. 그가 수줍은 표정으로 처음 꺼낸 말은 “지드래곤(그룹 빅뱅의 멤버) 같은 음악을 갖고 싶어요”였다. 브리즈 뮤직은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3주 동안 음악 공부를 한 다음에야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프레쥬디스 박청년=힙합이 뭐꼬


큰 기사에서 소개한 박성진 씨의 첫 앨범. 시골 청년의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친구 집을 찾아가 비료 포대를 쌓아 놓고 사진을 찍고, 글씨도 촌스럽게 디자인했다. ‘잘 들어봐라잉, 갱상도 싸나이가 부른다잉’이라는 외침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박 씨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느낀 불안과 각오를 담았다고 한다.

※‘오예!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세 곡은 엠넷, 멜론, 네이버 뮤직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O2#브리즈 뮤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