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3]중편소설<줄거리>‘이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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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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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송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중소기업의 홍보부에 근무하던 나는 정리해고를 당하고 이사를 한다. 새로 둥지를 튼 곳은 세 명이 사는 반지하 월세방이다. 이미 이교도라고 불리는 사내가 살고 있었는데, 내가 이사 오고 난 후 남자 대학생이 이사 왔다. 내 방은 이교도의 방과 맞붙어 있었고, 남자 대학생의 방은 내 방 건너편에 있었다. 세 사람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것처럼 불편 없이 지낸다. 나는 근처 도서관을 다니며 취직 준비를 하기로 한다.

이교도는 항상 동네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의심을 받았다. 이기적이라는 둥, 인사불성이라는 둥, 여자 친구 한 명 없다는 둥 부정적인 인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루는 동네 분식점에서 그를 우연히 보게 된다. 점심시간이라서 분식점 아줌마가 그에게 한쪽 구석 자리를 정해주었다. 그는 이를 무시하고 티브이가 잘 보이는 대각선 방향의 4인용 식탁을 혼자 차지했다. 그가 식사를 끝내 나가자 주인이 그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걸 듣게 된다. 이 일로 나는 그를 이기적인 인물로 추정하게 된다. 빌라 주인아줌마도 이교도를 이기적이라며 나의 추정에 힘을 실어준다.

한 달여 시간이 지날 즈음 인근 지역에서 이십대 초반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피의자를 정신 질환을 앓는 독신 남성으로 추정한다. 경찰은 인근 원룸 지역을 집중적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는 것과 함께 으슥한 골목 귀퉁이마다 잠복근무를 했다. 이로 인해 나는 이교도가 생각날 때면 그가 살인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하루는 이교도의 진짜 이름이 궁금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빌라 주인아줌마, 분식점 아줌마, 세탁소 아줌마 등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그의 본명을 알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부터 그는 이교도라 불려왔다는 걸 알게 된다. 이교도라 불리는 사내의 이름은 불확실했다. 그의 신원 불확실성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원불교 방송, 국악, 뉴에이지 음악과 잘 묶여지는 듯했다. 점차 나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간다. 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를 이기적으로 보았던 나의 추정이 잘못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이기적이라는 데 확증을 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주인아줌마가 이교도의 옷을 들고 나타난다. 주인아주머니는 방세에 추가로 세탁비를 받고 옷을 세탁해주었다. 교회를 다니는 주인아줌마는 나에게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입는 옷이 아닌지 묻는다. 게다가 주인아줌마는 연쇄살인의 피의자가 정신병자라면서 이교도가 그 연쇄사건과 관련이 되지 않나 의심한다. 이교도의 옷은 내가 다녔던 회사 홍보부의 사보에서 ‘건강’ 특집 기획으로 소개했던 심신수련원 배달선도의 옷과 유사했다. 사보를 찾아보니. 가슴팍의 ‘仙’이라는 글자가 같았지만 옷의 색깔은 달랐다. 이교도의 것은 흰색이지만 배달선도의 것은 황금색이었다. 내 머릿속으로 작년 말 뉴스가 스친다. 배달선도는 도주의 강간 사건으로 인해 내부 비리가 밝혀지면서 조직이 와해되었고, 도주는 외국으로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이날로부터 나는 이교도를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이교도는 자신의 이름이 밝혀지기를 꺼려하는 건 아닐까? 혹시, 지명수배를 받고 쫓기고 있는 몸이 아닐까? 만약 배달선도와 관련을 맺는다면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일 수 있지 않을까?

연쇄살인 사건 발생일로부터 사 개월이 지난다. 경찰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전혀 얻어내지 못했다. 경찰은 늦은 시간에 여성 혼자 귀가하는 것을 절대 삼가라는 경고 말고는 해줄 것이 없었다. 점차 동네에는 활기가 사라져갔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노래방이나 바, 단란주점은 9시 전후로 모두 문을 닫았다. 상가나 식당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짐에 따라 9시를 넘기는 일이 없어졌다. 동네 아줌마들은 뜨내기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표출하면서 이교도를 의심한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성토는 나에 비해 키도 크고 호남형인 이교도에 대한 은근한 관심으로 비추어졌다.

하루는 우연히 농협할인 매장에서 이교도를 마주친다. 나이에 비해 구김살 하나 없이 깨끗한 그의 얼굴에서 환한 광채가 솟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알아보는 듯 쓰윽 웃음을 짓고는 밖으로 나간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벽 너머에 주의를 집중한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이렇게 이어지는 원불교 방송과 엔야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 등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연이어 방바닥이 쿵쿵 울려온다. 상영산의 대금을 시작으로 가야금, 해금 등 각종 국악기들의 소리가 들린다. 이 음악에 맞추어 이교도가 움직이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길게 토하는 호흡 소리가 들린다. 서서히 나는 졸음에 빠져드는데, 잠결에 철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뜬다. 현관에 가보니, 이교도의 운동화가 없었다.

이튿날 또다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내가 사는 빌라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공원 앞길에서 일어났다. 피해 여성은 뒷머리를 쇠망치로 여러 차례 잔혹하게 두들겨 맞았다. 강도나 강간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유흥업소 종사자인 여성의 나이는 스물셋이다. 뉴스는 공원 앞 푸른색 보도블록 위에 흰 가운에 덮인 여자를 보여주었다. 주변에 경찰 십여 명이 없다면, 그 여성은 얌전히 누워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날, 나는 근처에 있는 빌딩을 찾아간다. 언젠가 새벽에 이교도가 이 건물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천도선원이 있는 7층에서 내린다. 그곳은 단전호흡을 하는 곳이다. 그곳 관계자와 대화를 나눈다. 천도선원은 배달선도에서 탈퇴한 사범들이 이전에 있던 다른 단체와 통합해 만들었으며, 배달선도가 도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사범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천도선원의 사범이 되기 위해서는 수련 테스트를 거치는 것과 함께 초급 한의학, 주역, 기공 이론 등의 과목의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을 듣게 된다. 이날, 뉴스에서 경찰이 연쇄살인범을 왼손잡이로 추정한다는 것을 접하게 된다.

이후, 두 달 넘게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경찰 단속이 느슨해진다. 나도 마찬가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교도에 대한 의혹이 차츰 시들해진다. 괜한 사람을 오해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럼마저 일어난다. 수개월 동안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보니, 아침에 이교도는 명상을 하지 않나 여겨졌다. 명상이 끝날 즈음 그의 감정은 최고치로 고양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내 경험으로 바꿔 말한다면, 몇 시간에 걸쳐 산을 탄 끝에 산정에 다다랐을 때의 기분과 같아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음악들이 이제는 내 기분을 맞추어 주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시디를 넣어 오디오를 튼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교도에 대한 과대한 의심은 은근한 호감으로 바뀐다. 주인아줌마가 말하는 것처럼 이교도가 이기적인 것 같지 않고, 또 연쇄살인범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교도는 평균 이상의 키에 머리는 장발이고 또 피부는 흰 데다가 항상 말없이 웃고 다니는 이상야릇한 사내였다. 그런 그가 동네 아줌마의 시선에 걸려 비난이나 푸념을 듣는 것으로 여겨졌다. 애초에 나처럼 작달막하고 검정 안경을 낀 사내는 그네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아줌마에게도 여자로서의 감정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대놓고 내색할 수 없는 듯했다. 여자들의 싫어함은 좋아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까.

어느새 동네는 예전처럼 다시 활기가 돌아 새벽까지 가게 불이 꺼지지 않고, 몇몇 여성은 대담하게 혼자 저녁 늦게 귀가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빨래를 해 주던 주인아줌마가 내 속옷을 잃어버렸다. 주인아줌마는 내 속옷을 찾는다며 이교도가 없는 틈을 타 그의 방에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간다. 그의 방에서 내 속옷을 찾지 못한다. 주인아줌마는 무당집에 온 것 같다고 한다. 이교도의 방에서 천부경이라는 액자를 보게 된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천부경이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는 한민족의 경전이라는 것, 천부경은 중국의 주역에 영향을 주었으며 반복해서 음송하면 천리를 꿰뚫을 수 있다는 것, 천부경에는 우리 민족이 문명의 전환기를 주도하고, 남성의 시대와 물질의 시대가 다하면 여성의 시대와 영성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이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란스럽고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루는 내가 이교도에게 말을 붙인다. 그에게 관심을 표명하자 그는 나를 자신의 방에 초대한다.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차를 마시면서 보니까 그는 왼손잡이다. 연쇄살인범이 왼손잡이로 추정된다는 뉴스가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진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말한다. 영가무도는 조선 말기에 김일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음아어이우’ 소리를 내면 단전호흡이 되면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춤이라는 것이다. 또한, 엽전 꾸러미로 운을 칠 수 있다고 하면서 동물들이 천재지변을 자각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듯이 사람에게도 본래 운수를 맞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 허황하게 들린다.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당연시하는 신비주의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날 이후 그를 비밀리 추적하기로 한다. 어느 비 오는 새벽, 그를 미행하게 된다. 이교도는 뜻밖에 몇 달 전에 한 여성이 피살된 장소에 도착한다. 그는 시신이 눕혀졌던 곳에 소주를 놓고 나서 두 손을 합장하고 큰절을 한다. 곧이어 춤을 춘다. 살풀이 같은 장면을 보게 되자, 그가 피살된 여성의 원한을 풀어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공기 중에 떠도는 물기 탓일까? 고향 앞바다에서 보았던 굿 장면과 무당 할머니에게 내 넋을 빌던 일이 떠오른다.

이교도는 다시 어디론가로 걸어간다. 거세진 빗줄기 속에서 그를 쫓아가다 보니 처음 보는 집들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 눈에 익은 퇴락한 3층 화강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식 창문을 달고 있는 건물 옆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일층에만 내부를 고쳐서 시계점, 빵집, 세탁소가 들어서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을 보고 고향에서 초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 건물을 떠올린다. 이교도는 그 건물을 스치고 계속해서 골목길을 걸어 나간다. 긴 긴 골목길이 이어진다. 그를 쫓던 어느 사이 낯익은 동네가 나타난다. 좀전에 보았던 3층 화강암 건물이 보인다. 맨 아래층에 시계점, 빵집, 세탁소가 보인다.

다시 이교도는 그 건물 옆 골목으로 빠져 들어간다. 계속해서 그를 쫓다 보니 슬래브 지붕으로 된 집들이 이어진다. 비에 젖은 나는 혼곤한 정신 속에서 그를 쫓아간다. 또다시 고향의 교회 건물 비슷한 화강암 건물이 나타난다. 내 등줄기로 냉기가 흐르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걸어가는 이교도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와의 거리가 단축되지 않는다. 그를 쫓아가다가 머리에 무엇인가가 부딪힌다. 미간에서 피가 묻어난다. 소스라쳐 놀라며 이교도를 쫓아 간다. 또다시 고향의 교회 건물 비슷한 화강암 건물을 지나 골목길을 걸어간다. 이러길 십여 차례 반복되면서 점차 내 몸의 감각이 없어진다. 계속해서 그를 쫓는다. 비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자 보통의 아스팔트 골목길이 나타난다. 곧이어 고향의 교회 같은 화강암으로 된 건물이 나타난다. 나는 시계점, 빵집, 세탁소 가운데 하나 앞에 쓰러진다.

이튿날 오후에 잠을 깨보니 나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젖어 있고, 미간에는 상처가 나 있다. 새벽에 이교도를 따라 나선 것이 생각난다. 철문 앞에도, 신발장에도 이교도의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이교도의 방문을 열자 그가 이사를 갔다. 벽에 걸어 놓은 천부경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 후 분식점에서 연쇄살인범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는 이혼 경력이 있는 30대 중반의 게임중독자였다. 분식점 아줌마는 이교도도 이사 갔고, 연쇄살인범이 잡혔으니 분식점에 손님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아르바이트 여대생도 귀갓길이 안심이라고 한다. 나는 밖으로 나온다. 성큼 다가온 여름 하늘은 고향바다처럼 한껏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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