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새해 특집]뱀은 풍요의 地神… 재물-다산-불사-재생의 길한 상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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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사년, 뱀의 의미와 상징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꽃대님 같다.”

서정주 시인은 시 ‘화사(花蛇)’에서 뱀을 원초적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했다. 시에서 뱀은 징그러우면서도 꽃대님(고운 색과 무늬가 있는 천으로 만든 대님) 같은, 즉 악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중적 존재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뱀을 흉측하고 무서운 동물로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신으로 신성시하며 숭배해왔다. 유럽에서는 뱀이 치료의 신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를 꾀어 원죄를 짓게 했다는 창세기에 따라 ‘사탄’으로 불린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다.

뱀은 파충류에 속하는 동물로 세계에 2500여 종이 서식한다. 이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독을 갖고 있다. 뱀의 크기는 5cm부터 14m까지 다양하고 색상도 가지가지다. 뱀은 죽은 동물은 먹지 않고 대부분 통째로 삼켜 먹으며, 겨울에는 겨울잠을 잔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신화 전설 민담에는 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상징도 다양하다. 뱀은 다리 없이 배로 기어 다니고 구멍 속에 들어가 땅 밑에 살기 때문에 땅과 밀착되어 있다. 이 때문에 뱀은 농경문화권에서 ‘지신(地神)’으로 간주되어 풍요를 상징한다. 뱀은 예부터 가옥의 밑바닥에 살면서 집안의 재산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으로 모셔졌다. 부자가 되는 것을 ‘업이 들어온다’고 하고,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업 나간다’고 하는데, 구렁이는 업신(業神)으로서 집안의 재물을 지킨다고 믿어졌다.

뱀은 그 모양 때문에 남근을 상징하기도 한다. 뱀이 여성과 성적 접촉을 하고 임신을 시킨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꿈에 뱀이 나오면 태몽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뱀에게 물리거나 뱀과 접촉하거나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은 재물운이나 태몽 등 길몽으로 해석된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뱀이 사람 주위를 떠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기분 나쁘게 기어 다니는 꿈은 재수 없는 꿈으로 풀이된다.

허물을 벗는 특징 때문에 뱀은 불사(不死)와 재생의 표상이다.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편저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뱀’에서 “고대 세계에서는 뱀은 나이를 먹고 죽는 동물과 달리 정기적으로 가죽을 벗고 갱신과 재생의 영원한 삶을 산다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뱀의 허물을 노년(geras)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뱀은 우리 전통에서도 무덤의 수호신, 죽은 이의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됐다.

뱀은 왕권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 보듯이 뱀이 왕관의 정면을 장식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몸에 뱀을 칭칭 감곤 했는데 그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 바티칸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삼국유사’에도 뱀이 왕권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기록돼 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침전에 저녁마다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어 궁인이 놀라 쫓아내려 했다. 그런데 경문왕은 “나는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자지 못하니 금하지 말라”고 했다. 왕이 잘 때 뱀이 혀를 내밀고 왕의 가슴을 덮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뱀은 용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뱀이 커서 구렁이가 되고,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십이지의 여섯 번째 동물인 뱀은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정사(丁巳) 기사(己巳) 신사(辛巳) 계사(癸巳)의 순서로 순행한다. 시각으로는 오전 9시부터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2013년 계사(癸巳)년이 밝았다. 다산과 풍요, 불사와 재생의 상징인 뱀이 올 한 해 모든 이들의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도움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참조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뱀’(이어령 책임편집·열림원·2011년),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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