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아파트의 변신 Season 2]<9>테라스 아파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5일 03시 00분


아파트마다 햇볕드는 마당이 있어 좋구나

아파트를 뒤로 밀면서 쌓으면 기존의 아파트 발코니와 달리 하늘이 열려 있는 테라스를 얻을 수 있다. 이 테라스는 단독주택의 마당처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임재용 대표 제공
아파트를 뒤로 밀면서 쌓으면 기존의 아파트 발코니와 달리 하늘이 열려 있는 테라스를 얻을 수 있다. 이 테라스는 단독주택의 마당처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임재용 대표 제공
《 최근 한일 현대건축 교류전의 커미셔너를 맡아 ‘같은 집 다른 집’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른가?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옛날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아니면 단독주택에 사는 양극단의 선택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일찌감치 버블이 붕괴되면서 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은 사라져 버렸다.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도 요사이 아파트 불패 신화는 깨지고 있다. 》
이번 전시를 통해서 확인한 사실은 지금 양국의 건축가들이 급격한 사회 변화, 특히 노인 세대와 독신 세대의 급격한 증가에서 오는 사회적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주거형식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셰어드 하우스(Shared House·공유하는 집)’라는 주거형식이 유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개의 원룸주택이 모여 있는데 입주자들은 침실만 개인 공간으로 쓰고 나머지 화장실, 거실 및 식당 등은 공유한다. 독신 세대의 원룸들이 모여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기존 원룸들이 세탁 공간, 독서실, 주방, 거실 등을 공유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 주거형식의 변화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파트의 변신’ 시즌2의 기획의도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상을 담아내는 새로운 아파트를 모색해 보자는 데 있을 것이다.

아파트의 변신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 첫째는 아파트의 내부를 변화시켜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다. 둘째는 아파트에 개개의 마당을 만들어 새로운 주거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에 더 관심이 있는데 최근 꾸준한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새로운 주거형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테라스 아파트이다.

아파트에서 발코니를 가지는 것은 쉽지만 하늘이 열려 있는 테라스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발코니는 아파트를 그대로 쌓아 올려 만들 수 있지만 테라스는 아파트를 고층으로 갈수록 뒤로 밀면서 쌓아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비는 조금 더 들지만 그 결과로 하늘이 열려 있는 소중한 마당이 생긴다. 특히 경사지에서는 축대를 쌓지 않고 테라스 아파트를 만들면 같은 공사비로 단독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마당을 얻을 수 있다. 아파트의 내부에서는 누릴 수 없는 또 다른 자기만의 세상이 생기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판상형 아파트와 함께 짓고 있는 저층 테라스 아파트. 임재용 대표 제공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판상형 아파트와 함께 짓고 있는 저층 테라스 아파트. 임재용 대표 제공
테라스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정겨운 마을 풍경을 상상해보자. 일광욕을 즐기는 신혼 부부, 텃밭을 가꾸는 노인, 에어로빅 교실이 열리는 주민센터 테라스, 아이들과 놀고 있는 젊은 부부,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는 골드미스, 장독대에서 된장을 푸고 있는 아주머니, 정원을 꾸미고 있는 일가족, 조용히 책을 읽는 학생,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 혹은 아저씨, 줄넘기를 하는 고등학생, 고추를 말리고 있는 할머니, 바비큐 파티가 벌어진 김 부장 집, 음악 감상 하면서 테라스 밖의 풍경을 응시하는 옆집 아가씨….

테라스 아파트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실제로 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증가하는 공사비가 제일 큰 부담이다. 하지만 경사지형을 이용해 축대를 쌓지 않도록 설계하면 토목 공사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 비슷한 공사비로 테라스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최근 필자는 경기 광주시에 테라스 아파트를 완공했다. 대지가 좁아 1.5∼2m 깊이의 테라스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입주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됐다. 지금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도 테라스 아파트를 하나 설계 중이다. 기존 판상형 아파트의 1, 2층을 부분적으로 비우는 필로티 방식으로 설계한 뒤 테라스 아파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테라스 아파트의 각 가구는 ‘ㄱ’자형 평면에 나머지는 외부공간인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다. 각 가구가 경사지를 따라 좌우로 엇갈려 쌓이고 또 뒤로 밀려서 쌓이면서 모든 가구가 테라스를 가지게 된다. 테라스 아파트의 옥상은 입주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모두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 수는 없다. 밀도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아파트 입주민 모두가 자기 마당을 가질 수 있는 테라스 아파트가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임재용 건축사사무소 OCA 대표 oca1@chol.com
#아파트의 변신#테라스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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