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전북 지역 최초로 기획한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에서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메릴린 먼로’ 10점을 비롯해 대중에게 친숙한 세계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 128점을 선보였다.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란 아마 이럴 것이다. 요즘 전북 완주군 구이면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심정이 그렇다. 전시실마다 피카소 샤갈 워홀 등 미술사에 등재된 예술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10월 19일 개막 이후 7주 동안 이 작품들을 보러 온 사람은 무려 7만여 명을 헤아린다. 개관 이래 처음으로 화장실 갈 틈도 없을 만큼 분주한 나날이지만 다들 뿌듯한 표정에 신바람을 내고 있다.
지금 이곳에선 전북 지역 최초의 대규모 블록버스터전이 열리고 있다. 해외 거장들의 작품 128점을 한자리에 모은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 서울에서 흔히 보듯이, 외부에서 기획한 전시에 장소만 빌려준 게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관과 교섭으로 마련한 자체 기획전이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디오를 빌린 사람들을 분석하니 전북은 물론 서울 경기 부산 강원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관객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시는 인상파 시대 이후 미술사의 핵심 작가를 망라한 서양미술거장전, 1960년대를 풍미했던 ‘옵아트’를 이끈 베네수엘라 작가들을 소개한 특별전으로 구성됐다. 내년 2월 17일까지. 3000∼1만 원. 063-290-6888 www.jma.go.kr
○ 시골 할머니들, 피카소와 만나다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작품 가격이 400억 원대를 넘는 피카소 말년의 100호 규모 유화 ‘누드와 앉아있는 남자’가 반겨준다. 전북도립 이흥재 관장은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루는 어르신 관객 두 명이 다가와 ‘관장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시더라. 내일모레면 우리가 80인데 죽기 전에 피카소 작품을 보게 돼 다행이라고. 서울에서 천하 없는 전시를 해도 우리 같은 늙은이가 어찌 가보겠나,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찡하더라.”
방학 때면 서울에선 비슷비슷한 블록버스터전이 한꺼번에 열리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거장들의 작품 감상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전북은 인구 200만 명이 안 되는 지역인지라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획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번 전시는 도민들이 인상파의 마네, 입체파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 샤갈 등을 내 고장에서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 점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처음엔 ‘지방에서 누가 돈을 만 원이나 주고 그림 보러 오겠냐’고 우려의 목소리도 컸으나 뚜껑을 열고 보니 명화에 대한 갈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전시장에서 내가 즐겨 다니는 식당 아주머니와 마주쳤는데 이런 말을 했다. 난 그림의 기역자도 모르지만 시골 사는 친구가 피카소랑 샤갈 작품 보러 가자 해서 그냥 따라왔다. 와서 보니까 참 좋다고.”
○ 지역 미술관, 세계와 통하다
예산이나 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 미술관에서 남미의 국립기관과 소통해 수준 높은 컬렉션의 보따리를 풀어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마련한 전시지만 내용이 옹골차다. 피카소 외에도 샤갈의 판화, 앤디 워홀의 대표적인 실크스크린 작품 ‘메릴린 먼로’ 시리즈 10점 등 대중과 친숙한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마네의 ‘발렌시아의 롤라’와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피에르 보나르, 장 뒤뷔페, 피터르 몬드리안, 로버트 라우션버그 등 미술 애호가들이 눈을 반짝거릴 만한 작품도 선보여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요제프 알베르스의 견고하게 채색된 사각형 그림, 루치오 폰타나의 칼로 찢은 캔버스, 지워진 얼굴과 절개된 살덩이 같은 형상을 담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판화도 관심을 끈다. 문화교류의 의미를 살린 베네수엘라 작가의 특별전도 풍성하다. 옵아트의 대표작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 크루스 디에스, 게고 등의 추상작품 31점을 만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