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 사람고기 구워먹었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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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대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문서사의 영토' 펴내
"파란만장했던 조선시대 재미난 이야기 많아요"

조선시대 문인 정재륜(1648-1723)의 '한거만록(閒居漫錄)'에 실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소개돼 화제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69)는 '한거만록'에 실린 '박연' 등 조선시대 한문 단편 115편을 선정해 우리말로 옮기고 작품마다 평설(評說)을 달아 '한문서사의 영토'(태학사)를 펴냈다.

임 명예교수는 "'한거만록'은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를 담은 보고서"라면서 정재륜의 정보력에 대해 "국가 전반에 걸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까지 미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정재륜은 명문가 출신으로 효종의 딸 숙정공주와 혼인해 부마(駙馬.공주의 남편)가 된 인물이다.

한거만록에는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보다 20여 년 전 제주에 표착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네덜란드 이름이 벨테브레이인 박연은 조선 여자와 결혼, 남매를 뒀으며 조선 땅에 정착해 살았다.

"박연이 본국에서 고려 사람들은 사람의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제주도에 처음 표류해 닿았을 적에 마침 날이 어두운 시각이었다. 사또가 조사하려고 횃불을 굉장하게 준비하고 나오는 것을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보고 다들 '저 불은 필시 우리를 구워먹으려는 것이라'고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2일 임 명예교수는 "요즘 사람들이 '스토리'에 관심이 많은데 현대인들이 잊고 있어서 그렇지 조선시대에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역사가 파란만장했던 만큼 이야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조선 시대에도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조선 시대 이야기를 읽고 드라마, 영화 등의 소재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임 명예교수가 쓴 '한문서사의 영토'는 그가 1970년대 이우성 실시학사 연구원장과 함께 펴낸 '이조한문단편집'의 후속편이다.

임 명예교수는 '이조한문단편집' 발간 후 약 40년간 한문 단편을 새롭게 발굴하고 연구한 성과를 이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책에는 고려 사람으로 원나라에 살다가 원나라가 몰락하자 고려로 귀환한 조반의 이야기를 담은 '조반의 애희'에서부터 19세기 말에 나온 이야기들까지 한문 단편 115편이 실려 있다. 조선 후기 이현기(李玄綺)가 쓴 야담집 '기리총화' 등 임 명예교수가 발굴한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책에 소개할 한문 단편을 고를 때 문학적 가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또 그 시대의 실상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지, 현대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수록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임꺽정' '전우치' 등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부터 '도박해서 미녀를 얻다' '구렁이가 보석을 토하다' '괴물 이근' '요승'(妖僧) '옥을 안고 통곡하다' '소를 탄 여자'에 이르기까지 제목부터 흥미진진하다.

"이야기가 다채로운데 용감하게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대단합니다.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남편을 공부시켜 과거급제시키는 기생 '일타홍' 이야기 등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갑니다."

국내 한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임 명예교수는 한국한문학회 회장,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 등을 지냈으며, 한문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만해문학상, 다산학술상 학술대상, 단재상, 연세대 용재상 등을 받았다.

정년퇴임 후에도 연구와 집필 활동에 매진해온 임 명예교수는 "20년 전에 '이조시대 서사시'를 펴냈는데 새롭게 발굴한 내용을 추가해 증보편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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