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떠난 자리 메운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
재정-운영 모든 상황 투명하게… 분규사찰서 모범사찰로 탈바꿈
오락가락하는 비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서울 봉은사 경내를 돌았다. 진화 스님은 “중노릇 잘하라는 세상의 질책을 언제나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언제나, 누구든지 찾아오면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절집을 찾으면 우선 마음이 편해야죠.”
794년에 창건된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56)의 말. 이곳은 재적 신도만 15만여 명이 넘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 사찰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0∼80년대 조계종 분쟁으로 ‘강남 총무원’이 들어서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최근에도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싼 당시 주지인 명진 스님과의 갈등으로 정치권 외압설이 불거지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그때 부주지였으며 2010년 11월 주지로 취임한 진화 스님을 21일 봉은사에서 만났다. 주지 취임 뒤 첫 인터뷰다.
“신도들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았고 상처도 컸죠. 개인적으로 봉은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조용한 대다수의 신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진화 스님은 직영사찰 문제 등 이른바 ‘봉은사 사태’가 화두가 되자 “아직은…”이라며 “(할 말은 많지만) 주지로 지난 상처를 다시 건드리기보다는 함께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게 먼저”라며 말을 아꼈다.
그동안 봉은사에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기도와 수행 중심의 도량(道場·사찰)으로 바뀌고 있다. 매월 개최하는 천수다라니 독송 3년 대정진 기도에는 4000여 명이 몰린다. 주지가 목탁을 치고 염불하는 것을 보기 힘든 요즘이지만 진화 스님은 새벽부터 직접 예불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선교율 대법회에는 매주 1000여 명 이상의 청중이 참석하고 있다. 무비스님과 고우스님, 도일스님의 분야별 법문과 진화 스님의 생활 법문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성과는 과거 분규사찰에서 조계종의 ‘모범 사찰’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 최근 일부 스님의 도박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조계종은 봉은사의 신도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을 종단 차원에서 공식 채택하기도 했다. 투명한 재정관리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대형사찰인 봉은사의 1년 예산을 물어봤다. “올해 예산이 130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대부분은 인건비와 포교, 사회복지를 위한 사업에 들어갑니다. 한마디로 봉은사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돈과 절집 운영에 관한 모든 상황이 신도들에게 알려져요. 제 ‘주머니 속사정’도 마찬가지죠.(웃음)”
스님은 “과거 조계종에서는 봉은사가 본사(本寺)가 아닌 ‘말사(末寺)의 꽃’이라는 농담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 옛날 얘기”라며 “이제 봉은사는 스님과 종무원, 신도회가 함께 가꿔가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덧붙였다. 조계종은 지역 대표 사찰을 25개 본사로 지정하고 그 아래 부속사찰인 말사를 두고 있다. 스님은 봉은사 사태를 계기로 묘한 관계에 놓인 명진 스님과 관련해 “지난달 다른 스님들과 봉암사에 갔을 때 만나 인사를 드렸다. 건강하게 잘 계시더라”고 했다.
진화 스님은 찾아온다기에 차나 한잔 마시려던 것이 인터뷰가 됐다며 웃었다. 그는 “어떤 종교든 행복해지려고 믿는 것 아니냐. 지금 이 시점에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수행자뿐 아니라 모든 신도가 현재 잘 살면 그것이 미래의 행복도 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