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담에 술 한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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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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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

- ‘하우스’(2004∼2012년·미국 FOX)
“네가 걔 거짓말에 속은 거야.” 그리고 짧은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언제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더욱 숨을 죽인다. 하지만 상대방은 자비를 베풀고 뒤돌아선다.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고, 새하얀 컴퓨터 화면 위로 눈을 돌린다. 깜빡거리는 검은색 막대기가 두 눈을 통해 끊임없이 신호를 전달한다. 할 일이 있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내뱉는 한마디. “모두 거짓말을 하지.”

이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미국 의학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인 닥터 하우스(휴 로리). 그는 절대 환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왜 환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냐고 묻지 않아. 다만 그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할 뿐이지.”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진실은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다만 무엇에 대해 거짓말을 하느냐가 다를 뿐이지.” 하지만 그는 훌륭한 진단전문의였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며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순간에도 그는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찾아냈다.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수학 20문제를 내주고 풀게 한 것. 학생들은 평균 4문제를 맞혔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스스로 채점을 하고 시험지를 문서 파쇄기에 넣은 후 맞힌 개수대로 50센트를 받아가도록 했다. 학생들은 평균 6문제를 맞혔다고 대답했다. 한두 명이 맞힌 개수를 많이 속인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이 한두 문제씩, 조금씩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리얼리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밥 먹었니?” “네(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었어요).” 상대방이 신경 쓰는 것이 싫어 거짓말을 한다. 상대방을 배려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착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번 주말에 뭐 해?” “약속 있어(없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 옷 어때?” “예쁘네(당신에게 하얀색은 안 어울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술 끊고 싶다).”

닥터 하우스는 괴팍했다. “바보, 멍청이!” 같은 말로 상대방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은 예사고, 비꼬는 데도 가히 천재적이었다. 다리가 아파 먹기 시작한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돼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못했고 시청자도 그를 외면하지 못했다. 2004년 11월 16일 시즌1이 시작된 이후 전 세계 66개국에서 방영됐다. 올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에 등재됐다. 시즌8이 올 5월 21일을 끝으로 종영했을 때, 그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은 그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수많은 착한 사람들은 “진실은 거짓말 속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던 하우스 안에서 평온을 찾았다. 하우스 앞에서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나 우리 삶은 그렇지 않다. 거짓말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번 더 품이 든다.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게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매 시간,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꿈을 꿀 때에도, 기뻐서 혹은 슬퍼서 거짓말을 한다.” 그저 인정하면 편한 것을.

동그라미
동아일보 기자. 동그라미가 좋다.

desdemona98@naver.com
#이 한줄#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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