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아파트의 변신 Season 2]<1> 아파트 비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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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서 베란다까지… 골드미스에게 香을 바치다

《 ‘성냥갑이란 오명은 싫다. 아파트에도 개성을 심겠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이들이 있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격주로 소개될 ‘아파트의 변신 Season 2’의 필자들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생활밀착형 설계, 그리고 파괴적 디자인들이 제 순서가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공동주택의 무료함에 지친 도시민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거라고 필자들은 자신한다. 첫 타석에는 서현 한양대 교수의 골드미스를 위한 아파트, 이른바 ‘아파트 비너스’가 들어섰다. 서 교수를 지원하기 위해 O₂는 골드미스 200명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집이란 어떤 것인지를 물어봤다. 과연 골드미스를 위한 최상의 아파트는 어떤 모습일까. 》

여자는 금성에서 오고 남자는 화성에서 왔다. 묶어서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서로를 마주보면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다. 겨루는 올림픽 종목도, 걸치는 찜질방 가운도, 봐야 할 드라마도 다르다. 죽을 때까지 서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살아있을 때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라는 주례선생님 말씀을 따라 이들은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가족이 중성의 단어이므로 가족이 사는 집도 중성화된 공간이다. 밖에서는 남녀가 유별한 화장실이 유독 집에서는 나뉘어 있다면 이상하다. 집은 남녀에게 헐겁게 맞춰진 공간이다. 워낙 피조물을 유연하게 창조해놓은 조물주 덕에 그럭저럭 맞춰 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저 화성인들과 결혼하여 복닥거릴 의지가 없는 금성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특별히 갈래지어 부르는 이름이 골드미스다. 그렇다면 이 금성에서 온 채집인들이 화성에서 살던 수렵인들과 공간요구상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이 채집인들에게 아파트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지하주차장이다. 아파트에서 지상을 공원화하는 바람에 지하주차장이 더 늘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은 영화와 신문에 수시로 등장하는 범죄공간이다.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화성에서 온 자들이라는 것이다.

주차장을 탈출하면 다음은 엘리베이터. 거리에서 차 조심하라는 건 엄마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진정 조심해야 할 것은 충동적 폭력성 잠재의 익명유기체들이다. 간단히 남자라고도 부른다. 엘리베이터는 보다 빨리, 보다 많이 실어 나르자는 수송의 목적은 달성하였으나 사용자의 미묘한 심리상태에는 무감각하다. 지금 우리의 골드미스는 이 폐쇄공간에서 점멸하는 숫자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엘리베이터의 반대쪽 모서리를 점유하고 있는 저 유기체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감지하려고 온몸의 더듬이가 곤두서 있는 상태다.
▼ TV는 머리위 레일따라 움직이고… 거실엔 핸드백 진열장 ▼

무사히 현관에 도착했다. 현관은 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접하는 공간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을 보자.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러나 여자는 구두와 시곗줄의 색깔 코디에서 마스카라의 끝선 정렬까지 완벽히 확인 점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부분과 전체를 비추려면 전신거울이 필요하다. 두 벽면에 거울이 달려 있다면 굳이 거울 앞에서 맴맴 돌 필요가 없다. 거무스름, 까무잡잡, 거무튀튀한 색상과 질감 차이를 확인하려면 동작감응센서 달린 전구가 아니라 자연조명이 필요하다.

선사시대의 채집을 요즘 단어로 번역한 것이 쇼핑이다. 거리의 시선에 대해 전신무장을 한 후 다녀온 곳은 골드미스들의 테마파크, 백화점이었다. 수만 년에 걸쳐 축적된 채집의 유전자를 과시하는 가장 극적인 공간. 뭔가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고 뭔가가 필요할지도 모르므로 백화점에 간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가봐야 안다. 세일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집은 생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채집 성과물의 전시장이다. 현관에서 만나는 첫 목록이 구두다. 이 물품은 남자가 신으면 학대를 위해 태어난 소모품이다. 인접 연관어는 무좀이다. 그러나 골드미스에게는 개인적 가치구현의 수단이며 사회적 위치표현의 도구로서 성취이자 자존심이다. 인접 연관어는 면세점이다. 기존의 중성형 아파트에서 구두를 담는 공간은 냄새나는 창고였다.

핸드백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그간 아파트는 이들에게 그냥 양말처럼 접혀서 옷장에 처박혀 있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핸드백들은 백화점 진열장 위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오늘의 코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남자들이 자랑하는 군대 내무반 관물정돈과 개념은 같으나 수준 차는 경운기와 스포츠카다.

가끔 성과물을 함께 감상해 줄 친구도 초대해야 한다. 요리는 중요한 공존의 노동이다. 지금까지 아파트의 부엌가구는 면벽한 노동을 강요했다. 친구와 함께하는 부엌은 노동의 현장이 아니고 나눔과 공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집은 음식을 나눠먹는 공간에서 시작하였다. 부엌은 집의 마음이고 심장이다. 골드미스들에게 친구와 함께하는 부엌의 가치는 특히 더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으니 여전히 여자는 사회적 동물이다. 전화기와 텔레비전은 항상 옆에서 떠들어 주는 중요한 동반자다.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처럼 텔레비전도 손끝의 동작만으로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와 재잘거려줘야 한다. 눈치 없고 무도한 수렵인들과 달리 이들은 내가 필요하다면 입을 다물어준다.

그러나 기계는 기계 이상이 될 수 없으므로 반려동물을 키운다. 하지만 이 생명체들이 남자들과 같은 점은 반려동물이 되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궁합이 잘 맞을 때는 좋은 친구지만 가끔 핸드백도 물어뜯고 아무데나 배설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밥도 혼자 챙겨먹지 못하므로 장기간 출장에는 대책을 세워놓아야 한다. 올라오지 못할 정도로만 바닥이 낮은 공간을 만들면 창살로 막아놓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격리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없으면 그 자리에 화초를 키우기도 한다. 흙만 보면 상추와 고추씨를 뿌리려 드는 것은 현실이라는 단어에 함락된 기혼 언니들의 선택이겠다. 정원이 아닌 텃밭이 절실하다면 집 안에는 꽃무늬 벽지와 방향제면 충분하다. 그러나 골드미스의 공간이라면 연분홍 꽃잎과 향기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것이 느껴져야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연분홍 치마에는 여성 전용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지 않다. 이 아파트 비너스도 여성 전용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골드미스들에게 더 잘 맞는 주거 형태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아파트는 나풀거리는 치마 같다고나 할까.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필자 명단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②조남호 솔토건축소장 ③황두진 황두진건축소장 ④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⑤정현아 DIA건축소장 ⑥김찬중 THE_SYSTEM LAB 소장 ⑦안기현 이민수 AnL스튜디오 공동소장 ⑧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⑨임재용 OCA건축소장 ⑩양수인 삶것(lifethings)소장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hyunseo@hanyang.ac.kr
#골드미스#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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