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치아를 훤히 드러내는 시원한 웃음과 보글보글한 앞머리, 숯검정을 바른 듯 짙은 눈썹…. 최근 그가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 나진기입니다” 하고 서울말로 인사하지 않았더라면 ‘회춘한 나훈아의 컴백’으로 착각할 뻔했다.
어리둥절해 있는 기자에게 그가 최근 낸 앨범 ‘최고의 여자’를 내밀었다. 타이틀 곡 ‘최고의 여자’는 가수 설운도가 작사했다. 수록곡 ‘그리고 후회’와 ‘어떻게 해야 하겠니’는 4월 타계한 고 이호준 작곡가가 편곡을 맡았다. “(이호준) 선생님 유작일 겁니다. 올해 초 작업 당시에도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셨는데 결국….”
나훈아(본명 최홍기)와 판박이인 이 가수, 나진기(본명 최진기·45)는 ‘너훈아’형 가수가 아니다. 나훈아의 친사촌동생이다. 물리적 흉내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유전자(DNA)를 공유한 사이라는 거다.
나진기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1994년 데뷔한 중견 가수다. 1995년 KBS ‘빅쇼’에서 나훈아와 한무대에 섰다. 사촌형의 회사 아라기획에서 앨범을 세 장(1994년 ‘나를 믿지 마’, 95년 ‘무’, 98년 ‘아가페/비오리’)이나 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닮은 외모와 창법을 보고 “나훈아 노래를 불러 달라”는 주문만 했다. “형님이 원체 빅스타라 제 일보다는 형님을 수발하고 의상 담당을 할 때도 많았죠. 가수 겸 직원이었던 셈이에요.” 나훈아 콘서트 리허설 때 대역으로 부를 때는 “형님과 더 똑같이” 불러야 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사람들 원하는 대로 형님 흉내만 계속하던 제가 가장 문제였죠.”
작심하고 형님 그늘을 떠나 일본 진출도 타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에는 아내가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마이크를 놨다. 경기 성남에서 1년간 토스트 가게를 했다. “하루는 가게에 우연히 인순이 누나가 들어온 거예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토스트를 굽는데 누나가 ‘아니, 나진기 씨,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묻는데 얼굴이 붉어졌죠.”
토스트 가게에 이어 건축 현장 감독 등을 하던 그는 2009년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경기 하남시 미사리의 ‘열애’ 카페에서 현재까지 매일 40분 정도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0개 객석에 주말이면 손님들이 꽉 차는데 매일 ‘나가수’에 나가는 것만큼 떨립니다.” 카페 일을 시작하며 그는 기존 창법을 다 버리고 자신만의 창법을 만드는 훈련을 2년간 계속했다. 이번 앨범은 그 결과물. “흉내가 아닌 저만의 ‘모던 트로트’를 만들어 갈 겁니다.”
호쾌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도 최근 개인적 문제로 활동을 쉬는 나훈아 얘기를 꺼내자 조심스러워했다. “지금 그만두기에는 형님 노래가 너무 아깝죠. 저도 대중의 가슴에 남는 진짜 가수로 거듭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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