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극 ‘추적자’ 서 회장역 박근형 “서 회장은 가족 지키려다 꿈이 변질된 불쌍한 사람”

  • 동아일보

서 회장 역을 맡은 박근형은 “실제의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서 회장 역을 맡은 박근형은 “실제의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뜻 모를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욕 봤대이∼” 하고 말할 줄 알았다.

10일 낮 12시 경기 고양시 탄현동 SBS 일산제작센터. 더운 날씨 탓에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자 배우 박근형(72)은 “더운데 오느라 수고했어요”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 나오는 ‘숨은 권력’ 한오그룹 서 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극 중 그는 악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보통의 악역과 달리 말 한마디로 ‘악마스러움’을 담아낸다. 10% 초중반대에 머물던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그의 대사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10일 20.7%(전국기준·AGB닐슨)를 기록했다.

―‘서 회장 어록’이 인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몇 년이 지나가믄 소작농이 지주는 안 무서워하고 마름을 무서워한다.’”

―그 대사를 고른 이유는….

“서 회장은 나약한 사람이다. (이 대사는) 사위 강동윤(김상중)이 아들을 위협하자 튀어나온 반발이었다. 서 회장은 권력을 쥐고 좌지우지하지만 공격적인 파괴자가 아니다. ‘근본이 가족’인 사람이다 보니 가족을 잃는 것이 두려워 정치권, 법조계 등 각 분야에 돈으로 사람을 심어둔 거다.”

―시청자가 보기에 서 회장은 ‘거대 악’일 뿐이다.

“혜라(장신영)에게 인간의 변절에 대해 말한 대사도 기억난다. ‘옆집 딸내미가 시집 가뿐 기라. 두어 달 지나니 술 먹는 버릇만 남은 기라’. 가족을 끔찍이 사랑했지만 권력에 젖어버린 서 회장이 자신에게 한 말로 들렸다. ‘꿈이 변질된 불쌍한 사람’이 내가 연기한 서 회장이다. 작가만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도 배역에 대한 작가다.”

―전북 정읍 출신인데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자연스럽다.

“사투리는 예전에 남포동 씨(부산 출신)에게 배웠다. 처음에는 대본에 ‘욕 봐라’라고 적혀 있었다. 화제가 되니 ‘욕 보래이∼’로 바꾸더니 지금은 ‘욕봐아아래이∼’로 변형됐다.(웃음)”

―2010년 ‘대물’의 조배호 역 등 권력가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배역만 들어오나.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맡을 역할이 없었다. 노인 연기도 안 되고, 젊은이 연기도 안 되더라. 슬럼프 속에서 홍유진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교수가 탤런트협회 계간지에 기고한 ‘역할 창조론’을 읽게 됐다. 극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물을 재해석하고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후 ‘여명의 눈동자’ 스즈키 형사, ‘모래시계’ 윤 회장을 맡았다.”

―추적자 결말은 어떻게 될 것 같나.

“모든 권력이 사라지고 그렇게 아끼던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시골로 쓸쓸히 떠날 거 같다. 내가 자주 상상한 서 회장 모습이다. 큰 권력을 가져도 혼자 남는 게 세상 아니냐.”

―54년차 배우다. 더 이상의 도전이 있나.

“연기는 ‘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어떤 배우가 특정 역할에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배역은 잘할 수 있는 게 배우 아니겠나. 내년에는 이순재 신구와 셋이서 코믹시트콤을 한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추적자#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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