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3>신안군 비금-도초도, 두개의 하트가 한 몸이 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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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해변의 도초 ‘가는게 해수욕장’과 비금 ‘하누넘 해수욕장’(아래 사진). 연인들이 이곳에 가면 ‘영원히 서로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된다. 하누넘 전망대엔 하트 모양의 예쁜 조각품도 서 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줘서 바다이다. 바다는 이 세상의 
바닥이어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대 바닥을 내밀어 봐,/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그건 사랑이겠지,/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박성우의 ‘바닥’에서)’. 신안=서영수전문기자 
kuki@donga.com
하트 해변의 도초 ‘가는게 해수욕장’과 비금 ‘하누넘 해수욕장’(아래 사진). 연인들이 이곳에 가면 ‘영원히 서로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된다. 하누넘 전망대엔 하트 모양의 예쁜 조각품도 서 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줘서 바다이다. 바다는 이 세상의 바닥이어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대 바닥을 내밀어 봐,/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그건 사랑이겠지,/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박성우의 ‘바닥’에서)’. 신안=서영수전문기자 kuki@donga.com
《거친 비바람에 맞선 풀잎들
서해에 뿌리 내리고
갯벌 토해내며
결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성공이 아니라 성실로
땅처럼 낮아져 열매를 얻고
바다처럼 내려가 생명을 거두도록
보릿고개 파도고개 너머로 키워낸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제 그 가지 담 넘은 큰 나무 되어
여기 모두 돌아왔습니다

살아내느라 버거우면
누구라도 한달음에 달려와
어머니 땅에 가슴을 묻고
거품 세월 토해내며
오늘 하루는
저 파도와 함께
고향노래가 되십시오

-고훈의 ‘내 고향 도초’ 전문
도초도(都草島·41.94km²)는 ‘풀이 많은 섬’이다. 옛날부터 초목이 무성해 말을 키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도초 사람들도 풀을 닮았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그래서일까. 도초도엔 인재(人材)가 풀처럼 무성하다. 하나같이 ‘즘게(큰 나무)’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비금도(44km²)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새가 활짝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飛禽島(비금도)’이다. 홍도에 버금갈 만큼 아름답다. 백령도와 크기가 비슷하다. 이웃한 명사십리(2.8km)와 원평해수욕장(1.3km) 해넘이가 황홀하다. 미끄덩! 붉은 해가 한순간 바닷속으로 잠긴다. 하늘도 붉고, 땅도 붉다. 구름도 붉고, 바다도 붉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동자도 붉다. 이미 해당화는 화르르 붉게 피어 하늘거린다. 두 해수욕장은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점토처럼 단단하고 곱다. 자동차가 지나가도 끄떡없다.

‘원시의 바닷가/모로 누워/찰방이는 파도에/삶의 응어리를 씻는다/바람도 누웠다/가느다란 실배암이 살랑살랑/꼬리를 흔드는 숲의 노래/인적이 끊기고/뱃길 끊어져/꿈틀거리는 머언 외로움/차갑게 쓸어갔다 밀어 넣는/거기/낯선 이방인의 탈을 벗고/별빛보다 먼저/태초의 아담을 만난다’

-박경숙 ‘비금도의 하루’에서

비금·도초도는 이제 한 몸이다. 1996년 두 섬을 잇는 다리(937m)가 놓였다. 두 섬을 합하면 울릉도보다도 넓다. 비금도 4000여 명, 도초도 3000여 명. 염전과 논밭 농사를 주로 하고 시금치 키우는 것도 똑같다. 들판이 넓고 기름지다.

도초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고란평야는 신안군에서 가장 넓은 들이다. 네모 반듯반듯한 논과 널찍한 직선수로가 육지의 평야지대나 똑같다. 도초 사람들은 ‘육지에 나가면 오히려 답답하다’고 말한다. ‘사방이 산으로 꽉 막혀 숨이 막힌다’는 것이다. 도초는 사방이 낮은 구릉과 평야, 그리고 바다뿐이다. 신안군은 앞으로 도초 화도선착장에서 감나무가 많은 시목해수욕장까지 11km 구간에 수국 10만여 그루를 심어 ‘수국꽃 세상’을 만들 계획이다.

도초에 풀이 많다면, 비금엔 바위가 많다. 비금·도초에서 가장 높은 선왕산(255m)과 능선으로 이어진 그림산(226m)은 바위산이다. 곳곳에 커다란 암봉이 불쑥불쑥 솟아 있다. ‘상암주차장→그림산→죽치우실재→선왕산→서산사→하누넘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5.4km 산행 코스는 3시간쯤 걸린다. 능선 양옆으로 바다에 단추처럼 떠 있는 섬들이 아슴아슴하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온몸이 오그라진다. 내월마을엔 성벽처럼 쌓아놓은 ‘바람막이 돌담(우실)’이 눈길을 끈다. 길이 40m, 높이 3m, 폭 1.5m의 커다란 돌담이다.

비금·도초엔 하트해변이 한 곳씩 있다. 해수욕장 모양이 영락없는 하트다. 비금의 하누넘해수욕장(길이 500m, 폭 100m)과 도초의 가는게해수욕장(길이 400m 폭 60m)이 바로 그곳이다. ‘연인이 이곳을 찾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하누넘엔 하트 모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산등성이 전망대까지 설치돼 있다. 매월 14일 ‘연인의 날’ 이벤트가 있다. 가는게는 언뜻 보면 게가 가는 집게다리 두 개를 벌리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하트 모양이기도 하다. 가는게는 접근하기가 아직 불편하다. 그만큼 손때가 덜 탔다.

비금·도초는 누가 뭐래도 ‘시금치의 섬’이다.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나는 ‘뽀빠이 섬’이다. 시금치는 눈이 좋아지는 ‘먹는 선글라스’다. 채소의 왕이다. 어느 날 법정 스님(1932∼2010)이 밥을 지으려 시금치를 씻다가 무심히 그 뿌리를 떼어서 버렸다. 스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이 이것을 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너랑 나랑 그냥 굶자.”

겨울에도 비금·도초는 곳곳이 온통 초록빛이다. 처음에는 섬사람들이 겨울에 채소로 먹으려고 심었던 것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1990년대 초 비금농협이 ‘섬초’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한 해 1200ha에서 18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잔류농약도 대부분 5% 이하다(기준치 30%).

섬초는 재래종으로 잎과 줄기가 두껍다. 겨울 노지에서 차가운 바닷바람과 눈서리를 견디느라 땅에 붙어 자란 탓이다. 갯벌 토양에서 자라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하다. 비타민 칼슘 등 무기질 함량이 다른 시금치보다 월등하다. 살짝 데쳐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 정도만 넣어 먹는 것이 좋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고 달콤하다.

신안=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이렇게 작은 도초도서 그렇게 많은 명사들이?


김정길 전 법무부 장관, 한화갑 전 국회의원, 김광희 전 농촌진흥청장, 박영관 전주지검검사장, 고담일 풍성건설 사장, 김국환 정암FM 대표, 이장송 육사 교수….

도초도가 낳은 유명인사들이다. 그만큼 도초도는 ‘인재의 고장’이다. 주민 30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수두룩하다. 현재 박우량 신안군수도 도초도 출신이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도초면 김희석 계장은 “그만큼 도초도 사람들이 옛날부터 자식교육에 헌신적이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라면 누구나 다 자식교육에 발 벗고 나선다. 그것 말고 뭔가 있긴 있을 텐데, 그걸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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