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일본 규슈 열차여행]<중>특급열차 ‘아소보이’로 돌아보는 아소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유황연기 내뿜는 분화구, 접근할 땐 바람의 신 허락 얻어야

해발 1000m의 아소칼데라 고원인 구사센리에서 바라다 본 아소산. 흰 연기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정이 아소의 다섯 화산 가운데 유일하게 분화 중인 나카다케다. 분화구의 정면 약간 오른 편으로 화구전망대와 로프웨이가 보인다. 연기가 이렇듯 전망대 쪽으로 몰리면 유황가스에 중독되기 때문에 로프웨이는 운행이 중단된다.
해발 1000m의 아소칼데라 고원인 구사센리에서 바라다 본 아소산. 흰 연기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정이 아소의 다섯 화산 가운데 유일하게 분화 중인 나카다케다. 분화구의 정면 약간 오른 편으로 화구전망대와 로프웨이가 보인다. 연기가 이렇듯 전망대 쪽으로 몰리면 유황가스에 중독되기 때문에 로프웨이는 운행이 중단된다.

규슈(九州)란 지명은 ‘아홉 주’에서 유래했다. 1871년 메이지 정부의 폐번치현(봉건시대 영주 소유의 영토인 번을 폐지하고 거기에 지방자치의 현을 설치한 개혁정책) 때까지 규슈에서 각축을 벌이던 9개 번(藩)이 그것. 구마모토 현은 그중 규슈 한가운데 ‘히고노쿠니’(肥後の國)의 땅이다.

이런 구마모토의 상징은 지금도 유황가스와 연기, 수증기를 내뿜는 아소 활화산. 그런데 이 화산은 아주 특별하다. 화산의 분화활동으로 생겨난 다섯 화산이 역시 화산 분화활동으로 형성된 남북 25km, 동서 18km의 거대한 칼데라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형국이어서다. 분화구 안에 있는 화산. 이건 분화가 최소 2회 이상 있었음을 말한다. 그 첫 분화는 27만 년 전이다. 당시 분화의 규모와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분화활동의 결과로 생긴 화구 외벽의 둘레가 장장 128km나 된다. 그 외벽에 둘러싸인 분화구 안 칼데라는 현재 평지인데 너비는 제주도(둘레 약 200km)와 비교하면 대충 짐작이 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아소 산의 분화가 두 섬을 하나로 이어주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38번째로 큰 섬 규슈는 그렇게 형성됐다.

아소 산은 구마모토의 상징에 그치지 않는다. 규슈 최대의 볼거리로 등극한 지도 이미 오래다. 그래서 누구든 규슈에 가면 아소 산 관광을 놓치지 않는다. JR규슈의 특급열차 ‘아소보이’는 관광객 가운데서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을 겨냥한 개성만점의 특급열차다. 아소 산은 구마모토 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분화구 투어의 출발점인 아소 산 역까지는 1시간 29분, 아소 산의 산악신앙 잉태지인 아소신사 소재지 미야지 역(종착점)까지 1시간 34분 정도다. 아소보이 특급열차를 타고 다녀온 아소 활화산과 그 주변을 소개한다.

4량 중 한 칸엔 어린이 놀이시설

JR규슈가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같은 열차’로 제작한 아소활화산 관광전용 특급열차 ‘아소보이’의 나무공 풀.
JR규슈가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같은 열차’로 제작한 아소활화산 관광전용 특급열차 ‘아소보이’의 나무공 풀.
토요일 오전 10시. 구마모토 역 구내로 전면창이 보통 열차보다 훨씬 큰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특급열차 ‘아소보이(阿蘇ぼい)’다. 옆면을 보니 귀여운 모습의 검은색 강아지 그림이 있다. 아소보이 캐릭터 ‘구로에몬’으로 구마모토(熊本) 현의 공식 캐릭터인 ‘구로몬’(흑곰)을 패러디한 것이다.

열차는 4량 편성. 3호차에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온통 새하얀 실내에 들어선 풀(pool) 등 어린이를 위한 지극한 배려 때문이었다. 여기엔 골프공 크기의 나무 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동화책이 꽂힌 도서실도 있다. 좌석도 특이했다. 어린이가 부모와 나란히 앉아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크기를 달리하고 어린이 좌석에 발판을 둔 것이다. 가죽시트 역시 순백색이었다.

다른 칸도 고급스러웠다. 실내 바닥과 시트, 벽면은 모두 컬러풀했다. 아소 산의 풍치를 가리거나 막힘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한 통유리창은 전 객실에서 단절 없이 이어졌다. 그런 객실 한쪽엔 창을 향해 나무벤치와 소파를 2열로 배치했다. 1, 4호 칸 정면엔 전망석도 마련했다. 카페에선 음료와 스낵, 기념품을 팔았다. 그중엔 아이들 용으로 개발한 아소보이 에키벤(열차도시락)도 있었다.

오전 10시 26분 구마모토 역을 출발한 아소보이는 11시 55분 아소 산 역에 정차했다. 아소 화산의 진수를 만끽하려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 진수란 아소5악 가운데 유일하게 분화가 진행 중인 나카다케의 화구전망대에 올라가 가까이서 화구를 내려다보는 것. 지구상에서 분화 중인 화구를 로프웨이로 올라가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 분화구를 오르내리는 로프웨이를 타려면 아소 산 서역으로 가야 한다. 역 앞에는 ‘아소 시 환상선’ 버스(B코스)가 대기 중이었다. 버스와 열차의 운행 스케줄을 연동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낮 12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고원도로의 오르막길을 35분이나 달려 넓디넓은 초원에 이르렀고 큰 건물 앞에 정차했다. 아소 산 서쪽의 해발 1000m 구릉 초원, 구사센리(草千里)다. 거기선 동쪽으로 아소5악이, 그 반대 방향으로 거대한 산줄기와 평원이 조망됐다. 동쪽 산악에선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그게 나카다케다. 반대편 평원은 27만 년 전 분화로 형성된 칼데라의 바닥이다. 원래는 물이 차 호수를 이뤘지만 수천 년 전 또 다른 분화로 인해 물이 빠져나가 이렇게 변했다. 평원 배후의 산줄기는 칼데라의 외벽. 이 외륜산이 아소5악을 동그랗게 감싸는 모습인데 총길이가 128km다.

맑은 물의 고장 구마모토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귀국해 축성한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현의 상징과 같은 유적으로 무사 복장의 모델 뒤로 천수각이 높이 솟아 있다.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귀국해 축성한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현의 상징과 같은 유적으로 무사 복장의 모델 뒤로 천수각이 높이 솟아 있다.
나카다케의 분화구 관광은 운이 따라야 한다. 바람 방향이 열쇠인데 전망대 쪽으로 불면 로프웨이 운행 자체가 중단된다. 치명적인 유황가스 때문. 지난달도 그랬다. 네 번째 분화구 취재는 이렇게 무산됐다. 네 번 중 딱 한 번 볼 수 있었다. 분화구 전망대에서도 경계해야 한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서다. 위험 상황이 닥치면 방송으로 알려준다. 그러면 즉시 대피소나 실내로 피한다. 4년 전 살짝 맡아 보았는데 들이켜는 순간 가슴에 고통이 느껴졌다.

분화구 관광은 포기하고 구사센리에서 자동차로 아소 산 남쪽의 미나미아소무라로 갔다. 시라카와수이젠(百川水源)을 찾아서다. 시라카와수이젠은 삼나무 숲속의 작은 계곡에 있다. 자그마한 연못인데 바닥에서 샘솟는 물의 분출량은 1분에 60t. 길이 25m의 수영장을 5분 만에 채울 엄청난 양이다. 샘가에선 사람들이 바가지로 물을 떠 마신다. 연못은 1m 깊이의 바닥에서 용출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맑은 물은 여기서만 나는 게 아니다. 구마모토 현 전체가 그렇다. 그래서 물은 구마모토의 특산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칼데라의 지하로 스며든 빗물이 거대한 지하 강을 형성하고 기반이 된 화산재와 용암지질이 훌륭한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용출량도 엄청나지만 물맛과 수질도 기막히다. 그래서 구마모토 현의 수돗물도 지하수다. 음료와 사케, 소주도 모두 지하수로 만든다. 생수나 수돗물이 같으니 굳이 생수를 사먹을 이유도 없다.

이런 물의 고장 구마모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아소보이의 종착역인 미야지(宮地)다. 미야지의 중심은 아소신사다. 이 신사는 특이하게도 주신이 아소 산이다. 신사의 도리이를 나서면 200m가량 양편에 가게와 상점이 늘어선 길이 이어진다. 여기가 미야지의 명물 ‘아소 이치노미야 미즈키 메구리(阿蘇一の宮 水其巡り)’ 현장이다. 미즈키란 ‘약수’를 말한다. 샘솟는 약수를 행인이 마시도록 제각각 음수대를 설치해 둔 스물여덟 곳을 두루 찾아다는 것을 말한다. 순방길엔 말고기 정육점에서 직접 튀기는 ‘말고기 크로켓’과 슈크림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상점과 가게로 활용 중인 폐교도 스물여덟 곳 중 하나인 데 골동품점인 ‘와카미즈노사토’에는 ‘아소미즈키야시키’라는 여인숙(2800엔+아침식사 700엔)도 있다.

규슈=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