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가가에게 ‘개구리 옷’ 입혔던 괴짜 디자이너 까스텔바작 서울서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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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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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작품 대중이 알아봐… 시대가 날 닮아가요

지난달 서울 마포구 홍익대에서 열린 전시회장에서 만난 프랑스 디자이너 까스텔 바작은 자신이 만든 옷을 입은 마네킹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 옷은 팝스타 비욘세가 레이디 가가의 ‘텔레폰’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때 입어 화제가 됐다. 까스텔바작 제공
지난달 서울 마포구 홍익대에서 열린 전시회장에서 만난 프랑스 디자이너 까스텔 바작은 자신이 만든 옷을 입은 마네킹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 옷은 팝스타 비욘세가 레이디 가가의 ‘텔레폰’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때 입어 화제가 됐다. 까스텔바작 제공
레이디 가가가 2010년 ‘생고기 드레스’를 입기 전까지 그녀가 2009년 독일의 한 토크쇼에서 입고 나온 개구리 인형 옷은 최악의 패션으로 꼽혔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유명 캐릭터인 ‘커밋 더 프로그’를 온몸에 휘감고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움과 비웃음을 보냈다.

이 옷을 만든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장샤를 드 까스텔바작(64)도 가가만큼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수 있는 옷을 개발했고 파스타 음식으로 코트를 만들었다. ‘지저스’라는 이름으로 청바지를 출시해 논란도 일으켰다.

지난달 말 서울 마포구 홍익대에서 열린 ‘까스텔바작’ 전시회장에서 만난 그는 검은색 재킷을 반듯하게 갖춰 입은 중후한 신사 같았다. 하지만 이내 “예술성이 꽃핀 신라시대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고 말문을 열며 괴짜 기질을 발휘했다. 그는 올해 초 국내 의류 브랜드 EXR과 손잡고 남녀캐쥬얼 브랜드 ‘까스텔바작 리니에’를 출시했다.

당신이 가가에게 입혔던 개구리 옷은 혹평을 받았다.

나는 그런 평가를 사랑한다. 최악이라고 느낀다는 건 이목을 끌었다는 얘기니까. 누구나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개구리 인형을 덕지덕지 붙인 옷에서는 어떤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 옷의 부제는 ‘개구리 대학살’이다. 개구리 인형들의 머리 100개를 잘라서 붙였다. 미국인은 예전부터 개구리 뒷다리를 먹는 프랑스인을 ‘프로기(froggy)’라 부르며 비하했다. 그런 편견과 시선을 개구리 인형을 통해 풍자하고 싶었다.

특이한 옷을 만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세상과 불화(不和)하려는 성향이 있었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항상 화가 나있었다. 남자 기숙학교에 다녔을 때 선배들이 학교에 불 지르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구경했다. 군사수업 시간에 꽃무늬 프린트 옷을 입고 나타났다. 기숙사의 더러운 담요로 옷을 만든 것도 그때부터다. 옷에 자주 쓰이는 소재가 싫어 샤워 커튼이나 이불, 인공 잔디 등으로 옷을 만들었다. 첫 작품은 1968년 풀로 만든 재킷이었다.

한국 회사와 손을 잡았다(지난해 말 국내 의류 브랜드 EXR는 ‘까스텔바작’를 인수했다).

2009년 독일의 한 토크쇼에 출연한 레이디 가가가 까스텔바작이 디자인한 개구리 인형 옷을 입고 있다. 동아일보DB
2009년 독일의 한 토크쇼에 출연한 레이디 가가가 까스텔바작이 디자인한 개구리 인형 옷을 입고 있다. 동아일보DB
10대 후반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어 실험적인 옷을 주로 만들었다. 동시에 대중적인 브랜드인 막스마라나 아이스버그와도 일했다. 혁신과 대중성 사이를 줄타기 하며 진화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예술적 기질을 잘 팔아줄 파트너가 필요하다.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시대를 너무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시대가 나를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너무 파격적이라 외면당하던 작품들을 이제 대중이 알아봐주고 있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남자 기숙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록스타가 되기엔 노래 실력이 부족했다. 배우가 될까 하고 영화 몇 편을 찍었는데 공백이 너무 길었다. 할머니가 방직공장을 운영했고 아버지는 섬유를 연구했다. 어머니가 드레스 디자이너였으니 내게 디자이너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디자인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는가.

텔레비전을 먹을 정도로 많이 본다. 가끔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충돌하는 걸 볼 때마다 영감이 샘솟는다. 레스토랑에 가면 식당에서 주는 소스를 거부하고 올리브 오일이나 머스터드소스 같은 각종 재료를 섞어 나만의 소스를 만든다. 주어진 뭔가를 왜곡하면 내가 권력을 갖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예전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고 들었다.

1992년부터 예닐곱 차례 왔다. 처음에는 시골 같았다. 역사적 정통성은 있었지만 현대적 정체성을 찾지는 못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의 느낌이었다. 요즘 서울에 오면 한쪽에는 구시대 역사가 살아있고 동시대적인 기술과 예술이 산재해 있다. 이걸 화학적으로 잘 결합시킬지 여부는 젊은이의 몫이다.

한국 사람들의 패션에 대해 평가해 달라.

1990년대 한국인의 패션은 럭셔리 브랜드의 짝퉁을 통해 서양인을 따라하는 것 같아 보였다. 요즘은 다르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을 때마다 ‘고유의 개성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태어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작은 옷가게에서도 양질의 기성복을 살 수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파는 옷도 괜찮다. 제일모직의 ‘엠비오’를 가장 좋아한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나 패션 스타일이 있다면….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랑방 재킷이 10벌쯤 있고 셔츠는 에르메스, 랄프로렌의 청바지와 팬티를 즐겨 입는다. 구두는 이탈리아 수제화 브랜드인 올가 벨루티에서 똑같은 모양의 스웨이드 신발을 10켤레 맞춰 신는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줬다. 할아버지부터 3대째 물려오는 시계의 가죽 끈은 빛이 바랬고 깨진 유리에는 스카치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라며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에르메스의 주황색 분필케이스도 보여줬다. 거리를 다니며 건물 벽에 트레이드마크인 천사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라고 했다. 이날 홍익대 곳곳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왔다는 그는 “다들 체포당할 거라고 걱정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악동 같은 웃음을 지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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