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알프스 익스프레스’ 하얀 동화 속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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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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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cket List Tour | 동아일보 ― 삼성카드 공동 기획

래티슈 철도의 빨간 열차가 플레수르 강 계곡(그라우뷘덴 주)을 가로지른 랑그비서 다리를 건너고 있다. 쿠어와 아로사를 잇는 아로사선의 콘크리트다리로 높이 42m, 길이 284m다. 스위스관광청 제공·안드레아 바드러트 쵤영
래티슈 철도의 빨간 열차가 플레수르 강 계곡(그라우뷘덴 주)을 가로지른 랑그비서 다리를 건너고 있다. 쿠어와 아로사를 잇는 아로사선의 콘크리트다리로 높이 42m, 길이 284m다. 스위스관광청 제공·안드레아 바드러트 쵤영
《누구든 이런 여행을 한 번쯤은 꿈꿀 터이다.

혼자 무작정 열차에 올라 아무 생각 없이 차창을 스쳐 지나는 낯선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무 곳에나 내려 발길 닿는 대로 쏘다니는….

내 생애 꼭 한 번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반드시 포함시킬 낭만여행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나 홀로 여행’의 최적지가 있다. 스위스다.

스위스는 나라 자체가 ‘신뢰’다. 스위스의 상징을 보자. 은행과 시계다. 이 둘 모두 ‘정확’과 ‘믿음’을 담는다. 스위스에선 열차도 같다.

시계만큼 정확하고 고급스럽다. 게다가 철도 시스템은 세계 최고다. 열차뿐일까. 전 대중교통이 그렇다. 노면전차와 포스트버스(우편물 운반을 겸한 노선버스), 보트(호수)가 역과 공항을 중심으로 시계처럼 정확하게 운행한다. 게다가 ‘스위스 패스’(철도기간패스) 한 장이면 만사형통이다.

아무 역에나 내려 가장 먼저 오는 버스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찾아도 아무 걱정 없이 두리번거릴 수 있는 곳. 지구상에 그런 곳이 스위스 말고 또 몇이나 될까.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여생을 스위스의 레만 호반에서 지내다 타계했다. 찰리 채플린도 같다. 이 둘은 스위스에 묻혔다. 이웃한 마을 브베와 모르주다.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스위스에서 영면을 택한 이유. 스위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이다. 그러니 생애 단 한 번, 버킷리스트 여행지로 스위스를 택함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올해는 해발 3454m의 ‘톱 오브 월드’역을 오르는 융프라우 산악철도가 탄생 1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다. 스위스 초콜릿을 깨물며 스위스 철도로 알프스의 산악과 호수로 여행을 떠난다.》
보름밤 산간마을에 묵어라


1995년 여름.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무심코 고개를 들어 쳐다본 창밖. 벅찬 감동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산악 풍광 때문인데 ‘세 자매’라고 불리는 베르너오버란트(스위스 알프스의 중부고원)의 주봉 융프라우와 그 왼편에 포진한 아이거, 묀히 봉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이 시리도록 빛나던 만년설의 봉우리. 해발 1000m 산악마을 뮈렌의 호텔 아이거에서 내 첫 번째 스위스 취재여행 중,그 여행의 바로 첫날 체험한 감동의 조우였다.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의 산중마을에서 하룻밤. 스위스 여행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그게 보름밤, 좀 더 욕심 내 한겨울이라면…. 알프스 최고의 사치다. 그 밤 설산 봉우리를 보라. 교교히 내려앉은 달빛에 만년설은 파르스름하다. 이렇듯 아름다운 밤엔 화이트와인이 필요하다. 그 달빛만큼이나 감미롭다. 스위스 초콜릿도 좋다. 그 부드러움이 달빛처럼 내 혀를 감싼다.

100주년 맞는 융프라우 산악철도

융프라우를 찾는 여행자는 한 해 65만여 명. 하지만 융프라우에서 밤을 보내는 동양인은 많지 않다. 바쁘게 짜인 일정 때문인데 버킷리스트 여행자라면 하룻밤 지내기를 권한다. 여행의 감동이 10배 이상 커질 테니까. 세 자매 봉우리 아래 융프라우 지역은 광대하다. 빙하마을 그린델발트를 비롯해 벵엔, 뮈렌 등 산간마을이 인터라켄(해발 500m)과 아이거 북벽 아래 클라이네샤이데크(해발 2061m) 사이 곳곳에 들어섰다. 각 철도는 마을로 운행되는데 ‘융프라우 철도’(출발역 클라이네샤이데크)만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해발 3454m) ‘톱 오브 유럽’을 오르내린다.

이 산악철도의 총연장은 9.34km. 2km를 뺀 나머지 구간은 급경사의 터널 구간으로 그 유명한 아이거 북벽 바위 속을 사선으로 관통한다. 정상 역은 묀히와 융프라우, 두 봉우리 사이의 안부(鞍部)인 융프라우요흐에 있다. 이 산악철도가 올해로 탄생 100돌을 맞는다. 1912년 2월 21일 새벽. 밤샘 작업 중이던 이탈리아인 광원들이 일출 시각에 맞춰 마지막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굉음과 동시에 햇빛이 터널 공사장으로 쏟아졌다. 7km 터널이 관통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해 8월 1일. 꽃으로 장식된 첫 열차가 정상 역에 도착했다. 역 밖 빙하엔 국기가 게양됐다.

철도로 만나는 다양한 어트랙션

융프라우 철도는 스위스 산악관광의 하이라이트다. 정상 역엔 알레치 빙하의 장관(두께 700m, 길이 22km의 유럽 최대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이 감춰져 있다. 아이거 북벽의 높이 3166m 지점에 가설한 아이스메어 역(해발 3166m)도 명물이다. 역 발코니에선 빙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본다. ‘스핑크스’(해발 3771m)는 정상 역 108m 위에 있는 야외전망대. 설산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빙하 30m에 얼음을 파내 조성한 빙하궁전(Ice Palace)과 베르크하우스(식당 5개의 휴게소)도 관광거리다. 야외로 나가면 만년설원에서 스키와 스노튜브를 즐기는 ‘스노펀(Snow Fun) 공원’도 있다.

철도 5개 노선도 제각각 다른 알프스의 매력을 간직한다. 아이거 북벽 아래로 운행되는 벵게른알프 철도는 아이거 봉의 풍치를, 시니게플라테 철도는 알프스의 야생화가 자라는 산악식물원을 보여준다. 최근엔 인터라켄의 두 호수와 세 자매 봉까지 잘 보이는 파노라마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한겨울 스키장으로 이용되는 그린델발트 빙하마을 뒤편의 피르스트는 곤돌라로 오간다. 이곳 산간의 자일파크(유격훈련장처럼 꾸며진 놀이기구 동산)엔 해발 2168m에서 1955m까지 앉은 채로 줄을 타고 미끄러지는 ‘피르스트 플라이어’와 수직고도 520m 아래 그린델발트까지 킥보드 모양의 자전거로 다운힐하는 트로티 자전거가 있다. 61도 급경사 로프웨이로 오르는 뮈렌에선 실트호른 정상(해발 2970m)행 곤돌라가 운행 중이다.

2000년 역사의 스위스 온천은 다양한 함유 물질과 풍치로 이름났다. 대표적인 산악온천마을 로이커바드(발레 주)에 있는 린더호텔의 야외온천풀(왼쪽)과 융프라우 지역의 빙하마을 그린델발트(1034m)의 한겨울 모습. 교회 뒤로 베터호른(3701m)이 보인다. 스위스관광청 제공
2000년 역사의 스위스 온천은 다양한 함유 물질과 풍치로 이름났다. 대표적인 산악온천마을 로이커바드(발레 주)에 있는 린더호텔의 야외온천풀(왼쪽)과 융프라우 지역의 빙하마을 그린델발트(1034m)의 한겨울 모습. 교회 뒤로 베터호른(3701m)이 보인다. 스위스관광청 제공


물의 해 스위스에서 온천스파 즐기기

스위스의 온천 역사는 유구하다. 2000년 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로마제국이 전상자 치료를 위해 개발한 것인데 생모리츠와 로이커바드가 대표적이다. 이 온천수는 120여 개의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로 채워진 1484개의 호수와 강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데워진 것. 그래서 함유 물질이 다양하고 스파 효과도 높다. 로이커바드의 경우엔 130여 종이나 된다고. 럭셔리 스파 여행지로는 생모리츠 부근 엥가딘 계곡의 스쿠올이 이름났다. 티펜카슈텔 성 부근의 ‘바드 알바노이’는 유황천이다.

수(水)치료센터를 겸한 호텔도 좋지만 보통의 여행자라면 공중스파를 이용한다. 거기엔 야외 및 실내 풀, 사우나, 카페테리아가 있어 휴식하기 좋다. 스위스인도 독일인처럼 스파를 좋아한다. 풀은 수영복 차림으로 이용하고 사우나는 남녀 모두 맨몸 차림이다.

스위스는 철도여행의 천국이다

‘스위스 패스’만 있으면 스위스에선 어디든 원하는 곳을 편히 찾아간다. 버스와 노면전차, 배까지 모두 통용돼서다. 다양한 이름의 ‘특급(Express)’ 열차도 포함된다. 빙하 특급, 베르니나 특급, 골든패스라인 등등 다양한데 모두 정기노선 철도. 이런 이름은 각 노선의 풍치 구간에서 따왔다. 생모리츠와 체어마트, 두 스키마을을 오가는 빙하특급은 빙하협곡을 통과한다. 골든패스라인은 스위스를 횡단한다. 베르니나 특급은 단 3개뿐인 세계유산 철도 가운데 하나. 베르니나 고개(해발 2328m) 양편의 생모리츠와 티라노를 잇는다.

베르니나 고개는 알프스 동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험준한 산악인 베르니나 대산괴의 안부다. 개통은 1912년. 1km마다 커브가 평균 7개(총 407개)나 될 만큼 험준한 지형에 가설됐다. 그런데 터널 대신 굳이 커브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주변의 알프스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유네스코가 이 철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이유도 같다.

베르니나 특급의 최고 정점은 오스피치오 베르니나 역(해발 2253m). 그 직전 비안코 호수를 지난다. 캄브레나 빙하에서 녹아 흘러든 물인데 남으로 흘러 흑해로 유입되는 다뉴브 강, 북으로 흘러 아드리아 해로 가는 포 강의 발원지다. 베르니나 특급에도 전망대역이 있다. 알프그륌(해발 2091m)이다. 산 아래로 알프스 마을과 팔뤼 빙하가 조망된다. 2, 3월엔 ‘보름달 열차’도 운행한다.

음악과 초콜릿의 명소 찾아

루체른은 음악의 도시다. 피어발트슈테터 호반의 멋진 뮤직홀 카카엘(KKL)에서 전 세계 음악 애호가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할 좋은 콘서트가 수시로 열린다. 올 3월 24일∼4월 1일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볼로냐의 모차르트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모차르트의 린츠교향곡과 슈만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하는 등 다양한 콘서트가 예정됐다. 카카엘의 워터프런트는 콘서트 입장에 앞서 카푸치노나 초콜릿 음료를 홀짝이며 행복감에 젖기에 좋은 야외 호반카페다. 월드카페는 호수 정경을 감상하며 아침을 먹기에 좋다.

스위스 초콜릿이 시계만큼 명성이 높은 데는 ‘신선한 우유’와 ‘장인정신’이 뒷받침됐다. 세계 최초의 초콜릿공장(1819년 카르지에), 우유와 초콜릿의 융합(1867년 브베), 초콜릿 녹이는 공법(1879년 베른) 모두 스위스에서 개발됐다. 린트, 네슬레는 모두 스위스 초콜릿 회사다. 초콜릿 열차(몽트뢰 역 출발)까지 있다. 네슬레 스위스가 메종 카이예에 조성한 초콜릿역사박물관 관람 후 공장 견학에 시식이 포함됐다. 취리히의 중앙역거리와 루체른 구시가엔 초콜릿 가게가 즐비하다.

스위스=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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