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한 사람을 위한 자리, 이보다 편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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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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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O₂’ 커버스토리의 주제는 ‘한 사람을 위한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은 군중에서 떨어져 나와 진정으로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지요. ‘O₂’ 는 ‘영혼의 치유 공간’을 자처하는 1인 미용실과, 경남 하동의 ‘한 사람을 위한 찻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1인용은 아니지만 소중한 연인과 부부, 절친한 친구들을 위해 테이블 하나만을 놓고 운영하는 식당도 추가 취재했습니다. 복잡한 세상과 떨어져 있으며 진정한 휴식이 있는 별세계, 한 사람(또는 한 팀)을 위한 공간으로 안내합니다.》
미용사 김경신 씨가 고객의 머리를 염색해 주고 있다. 재미있고 편안한 그의 미용실 안에선 누구든 수다쟁이가 된다. 실컷 떠들고 나면 어느새 마음속 스트레스가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김 씨가 입고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애용하는 ‘시장표 꽃무니 조끼’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미용사 김경신 씨가 고객의 머리를 염색해 주고 있다. 재미있고 편안한 그의 미용실 안에선 누구든 수다쟁이가 된다. 실컷 떠들고 나면 어느새 마음속 스트레스가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김 씨가 입고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애용하는 ‘시장표 꽃무니 조끼’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 서울 홍대 인근 ‘삥 미용실’… 한 사람만 받아 한 시간 정성
영혼 치유하는 가위테라피, 평화가 물밀듯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지하철 상수역에서 100m 떨어진 큰길가에 있는데도, 스마트폰의 지도가 위치를 정확히 찾아주었는데도 말이다.

‘삥 미용실’을 찾은 건 순전히 운이었다. 지나가는 길 왼쪽에 살찐 고양이 두 마리가 자고 있는 창문이 보였다. 고양이를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었는데 옆으로 누워 있는 ‘이발소 삼색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 보니 바로 그곳, 삥 미용실이었다. 미용실은 건강원과 카페, 전파사, 그리고 주택가와 사무용 빌딩이 공존하는 길가에 묘하게 숨어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말이다.

“30곳에서 일하다 잘려 봤어요”

미용실 안엔 주인장은 없고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손님만 앉아 있었다.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색색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청동이나 인사동의 빈티지풍 가게를 통째로 옮겨놓은 모습이랄까.(놀랍게도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장이 직접 꾸몄다고 한다.) 천장에는 커다란 노란색 꽃이, 바닥에는 타일과 쇠징으로 만든 고양이 형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벽에 붙은 파란색 양철 슬레이트 위에는 옛날 배우들의 분장실처럼 전구에 둘러싸인 거울이 걸려 있었다. 창문가의 우편물을 보니 슬쩍 웃음이 나왔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번지 삥 원장님 귀하’라니…. 잠시 후 뭔가를 들고 헐레벌떡 길을 건너온 주인장이 명함을 내민다. ‘미스코리아 출전 상담.’ 그 덕분에 시작이 아주 유쾌해졌다.

간판이 없는 ‘삥 미용실’의 입구. 삼색기둥 조명 아래 창문에선 고양이 두 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간판이 없는 ‘삥 미용실’의 입구. 삼색기둥 조명 아래 창문에선 고양이 두 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미용실 주인은 올해 서른두 살인 김경신 씨. 목포에서 스무 살 때 상경한 직후부터 미용 일을 했다. 이곳에 본인의 가게를 연 것은 2년 전. 그전에는 “유명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30곳에서 일하다 잘려봤다”고 한다. 물론 농담에 더 가깝다.

삥 미용실은 ‘1인 미용실’이다. 손님을 한번에 한 명씩만 받는다. 공간이 작아서도 그렇고, 주인장의 영업방침 때문에도 그렇다. 손님들은 주로 전화로 예약을 한 후 찾아온다.

길가다 들어오는 손님은 정말 드물다. 간판이 없고 밖에서 잘 들여다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년 반 동안 오며가며 쳐다보기만 하다 머리 깎으러 온 사람까지 있었을까.

2만원짜리 심리 상담

하지만 삥 미용실의 특이한 점은 정말 따로 있다. 바로 주인장이 미용실을 ‘영혼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미리 이 사실을 알고 간 터라 단도직입적으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사람은 외롭거든요.” 간결하지만 묵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부터 정신적 위안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거다. 이번엔 손님 심모 씨(28·쑥스럽다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런가요?”

“다른 미용실하고는 달라요. 특별하다기보다는 편하다는 게 정확할 거예요. 다른 미용실에 가면 뭔가 모르게 압박감 같은 게 느껴지는데, 여긴 그런 게 없거든요. 여기선 무엇보다 재미가 있고 기분도 좋아져요.”

말하는 내내 그의 무릎 위에는 고양이 ‘말숙이’가 올라와 있었다. 심 씨는 계속 고양이를 쓰다듬어 줬는데, 말숙이는 손님이 그러든 말든 계속 낮잠을 잤다. 취재 내내 창가에 있던 고양이들을 포함해 세 마리 모두가 쿨쿨 잠만 잤다. 그러면서 묘하게 편안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주인장 김 씨는 “손님들이 우리 미용실에 오면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 같다고 한다”며 웃었다. “왜 그런가요?” “저랑 손님이랑 두 사람만 있으니 편안해 하세요. 차례를 기다리거나 남에게 신경 쓸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정신적 위안이라는 게 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사소한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의외로 남자들도 수다를 좋아해요. 저희 손님들은 얘기하러 오세요. 고양이도 보러 오시고.” 요상한 패션 센스(그는 할머니들이 입는 ‘시장표 꽃무늬 조끼’를 입고 있었다)에 어울릴 듯도 하고 어울리지 않을 듯도 한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예전에 강남에서 잘나간 적도 있어요. 화보 촬영도 많이 했고.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게 잘 안 맞더라고요. 동료들하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체제도 싫었어요. 많이 벌면 좋지만 주변에 안 좋은 영향도 끼치고, 손님도 꾀어야 하고….”

그래서 정이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단다. “2년 쯤 전이었어요. 내 공간도 가지고 싶고, 미용실도 하고 싶고, 경쟁 없이 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 미용실을 차렸죠.”

개인적 꿈을 이룬 건 좋다 싶었다. 그런데 손님을 1명씩만 받아서 유지를 하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까. 궁금해서 요금을 물었다. “커트는 2만 원씩 받아요. 염색은 6만 원, 파마는 7만 원부터예요. 비싸다고 도로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합니다. 샴푸도 해 드리고….”
얼핏 계산해 봐도 홍익대 주변(좀 외곽이긴 하지만) 미용실 주인치고 그리 큰돈을 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요금도 요금이지만 혼자 일하기 때문에 손님을 많이 못 받기 때문이다. “현재 수입에 만족하세요? 돈 많이 벌고 싶지 않아요?” “얼마나 벌어야 많이 버는 건가요? 300만 원, 400만 원? 남 밑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보다는 많이 벌지만, 개업한 다른 선배들보다는 덜 버는 것 같아요. 저도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이렇게 일하는 게 좋아요. 정과 인간미가 있잖아요.”

“커트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요금은 2만 원. 그러니까 2만 원에 심리 상담을 해주는 셈이네요.” “그렇네요. 하지만 저도 손님들하고 얘기하면서 치유를 받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요. ‘아저씨(2010년 8월 개봉)’ 보면서 시작해 ‘도가니(2011년 9월 개봉)’를 보고 끝났어요. 나 지금 굉장히 슬퍼야 하는데… 하하.” 손님들 때문에 슬픔이 덜하다는 뜻이었다.

‘저 너머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새 심 씨가 머리를 감을 때가 됐다. “자, 이쪽으로 오실래요? 샴푸하시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샴푸실 아닌가요?” 손님이 말했다. “세 걸음이면 되네요.”

주인장 김 씨는 머리를 감기면서도 젊은이답지 않게 구수한 입담을 계속 풀어놓았다.

“제 휴대전화에 번호가 저장된 손님이 모두 404명이에요. 아기 같던 손님이 결혼해 이제는 그 남편이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고요, 가족과 함께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직장인이 많아 어떨 땐 밤 12시까지 일해야 해요. 그래도 좋아요. 얼마 전부턴 저녁에 오시던 분들이 낮에 오시는 경우가 좀 있었어요. ‘회사가 부도나서 낮에 가 있을 곳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당연히 이런 분들을 보면 안타깝지요.”

“사람을 좋아하시니 손님이 더 많이 오면 좋겠네요.” 이 말을 듣자 그는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제가 낯가림이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많이 오면 힘들더라고요. 물론 돈을 더 버는 것도 좋지만 아직까진 가게 운영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갈리기도 한단다.

“저랑 안 맞는 사람도 있어요. 안티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걸 다 신경 쓰면서 살겠어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 할 만한 소리가 서른둘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님 심 씨가 염색을 끝내고 떠날 무렵 남자 3명은 모두 수다쟁이가 돼 있었다. 삥 미용실 안에서는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됐다. 3명이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열심히 떠들어댔다. 바깥과는 다른, 따뜻하고 즐겁고 아늑한 공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전재영 LG전자 MC사업본부 심리상담실장은 “김 씨의 미용실은 놀랍도록 실제 심리상담 공간과 닮았다”고 말했다. 일대일 대화는 물론이고 그림 등 시각적 인테리어로 편안함을 주는 것까지 모두가 상담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란 설명. “삥 미용실 같은 공간에선 사람들이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 심리적 이완효과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가끔씩 ‘저 너머 세계’의 사람들이 잠자는 고양이들에게 알은체를 하며 지나갔다. 배낭을 맨 유치원생부터 동네 할머니까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징하게’ 잠만 자던 고양이들은 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들어올려 인사를 시킬 때에야 부스스 일어났다.

“인간적으로, 들어올 때보다 훨씬 낫죠?” 오렌지브라운(오렌지색+갈색) 염색 머리를 말려주며 김 씨가 말했다. “조심해 가세요.” 그는 손님이 일어서자 문밖에까지 나가 인사를 했다.

기자는 주인장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손님이 왔을 때 자리를 떴다. 따라 나온 주인장 등 뒤로 빨간색 벽에 반사된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기자는 그곳을 뒤로하고 다시 회색빛 거리 속으로 돌아왔다.

P.S. 삥 미용실이란 이름은 ‘바쁘게 살지 말고 삥∼ 돌아가며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자’는 생각에서 나왔다. ‘고객에게 삥(돈 등을 협박해 빼앗는다는 뜻의 은어)을 뜯겠다’는 뜻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지만, 김경신 씨가 고객에게서 뜯어내는 것은 삥이 아니라 마음속 근심과 걱정이다. 가슴이 허하거나, 수다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은 삥 미용실에 머리 하러 한번 가 보시라. 하지만 럭셔리한 것을 좋아하거나, 1인 미용실인 만큼 뭔가 ‘떠받들어 주는’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가지 말 것.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2> 경남 하동 ‘금향다원’ 다실… 한 사람이 차를 음미하는 공간
차 향기와 대자연,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다


향긋한 차향이 피부 깊숙이 파고든다. 그와 함께 잊고 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날이면 그리움이 더욱 깊어질 듯하다. 하동=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향긋한 차향이 피부 깊숙이 파고든다. 그와 함께 잊고 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날이면 그리움이 더욱 깊어질 듯하다. 하동=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산갈치가 먹고 살았다는 약수물로 끊인 차예요.”

소나무를 직접 손질해 얹었다는 서까래가 황금빛 찻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갈치의 용’이라 불리는 산갈치는 바다 깊은 곳에 산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산갈치가 한 달 중 보름은 바다 속에서 살고, 보름은 산으로 날아가 산 속에서 산다고 믿었다.

“참, 마을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이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분들도 많대요. 신기하게도 물이 사시사철 온도가 같아요.”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금향다원(www.goldaroma.co.kr)’ 안주인 김미희 씨(46)의 옛날이야기가 약 17m²(5평) 남짓한 다실(茶室) 안을 가득 채웠다.

문을 안 잠그는, 한 사람만을 위한 다실

이곳은 김 씨 부부가 혼자 오는 손님도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쉬었다 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다실. 4면에 다 창을 내 주변 경치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다원을 둘러싼 울긋불긋한 산들은 물론 아래쪽에 있는 마을도 아담하게 내려다보인다.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고즈넉한 산사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화 중 말이 잠시 끊어졌다. 차 따르는 소리가 귀를 채웠다. 바닥에 깔린 물풀로 만든 자리를 만지자 기분 좋은 까칠함이 묻어났다.

“방의 네 면을 다 다르게 만들었어요. 경치가 잘 보이게 창도 크게 내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김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보통 손님들이 얼마나 오세요?”

“주중에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주말에나 좀 오시고.”

옆에 앉아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바깥주인 이기성 씨(48)가 말을 받았다.

“차를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은 없어요. 창 밖 경치 한번 내다봐요. 얼마나 좋아요. 여기서 차 한 잔 마시고 경치나 즐기다 가시라는 거죠.”

두 내외는 2005년 6600m²(2000평)의 차밭을 샀다. 그리고 2007년부터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해 팔고 있다. 지난해 3월 차를 덖을 때 필요한 황토방을 만들며, ‘한 사람을 위한 다실’도 2층에 함께 만들었다.

“차밭을 시작한 이유 중에 우리가 좋은 차 마시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만든 차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거죠. 다실도 그래서 만든 거예요.”

입안에 감도는 차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안 바쁠 때나 이리 직접 차를 대접하지요, 바쁠 때는 손님들끼리 먹고 가라고 해요. 멀리 나갈 때도 항상 문을 열어놓고 다니거든요. 가지고 갈 것도 없잖아요.”

찻값은 무료

다실에서 원하는 대로 차를 마실 수 있지만 따로 찻값을 받지는 않는다. 맛이 마음에 들어 따로 차를 구입해 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도 다들 얼마씩 차탁 밑에 돈을 놓아두고 가세요. 그러면 또 저희가 고마워서 따로 차를 보내드리기도 해요.”

이 씨의 얼굴 위로 멋쩍은 미소가 떠올랐다.

“도시 생활이 너무 여유가 없잖아요. 찾아오시는 분들 보면 정신적으로 쉬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차는 우리 다원에서 만드는 ‘악양춘’이에요. 마을 할머니한테 차 만드는 방법을 전수 받았죠. 감기에 좋다고 해서 ‘고뿔차’라고도 해요.”

설탕이 귀하던 시절, 이 마을 어르신들은 감기에 걸리면 이 차에 사카린을 타 마셨다고 한다.

화제가 단골손님으로 옮겨갔다. 김 씨가 이종해 경남과학기술대 조경학과 겸임교수(47)를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아내와 함께한 지리산 여행길에 길가에 세워놓은 작은 표지판 하나에 이끌려 들어와 ‘단골’이 됐다. 가끔 혼자 주말에 다실을 찾는다는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다실 창문으로 보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이 장관이에요. 때로는 구름이 산 밑을 가려 꼭대기만 보이죠. 마을 전체가 구름에 뒤덮여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의 목소리에 신바람이 묻어났다.

“밖을 내다보며 다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도시에선 생각하지 못했던, 잃어버리고 있던 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돼요. 혼자서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값진 경험이죠. 그런데 저는 그 장소가 소문이 안 났으면 좋겠는데….(웃음)”

남자들이 바깥으로 떠도는 이유

1시간 넘게 두 내외와의 ‘티타임’이 이어졌다. 이후 혼자 남게 된 시간. 마음이 차분해지며 몸과 마음의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 같았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에 도시의 먼지가 씻겨 내려갔다.

사람들은 의식·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존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의 시선에 피곤해하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긴장감을 느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개인적인 공간이다. 나만의 공간은 심리적 안정과 자기 관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아이들에게 독립된 방을 주면서도 가장의 공간은 필요 없다고 한다. 바깥에서 생활하는 남편들에게도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한 것이다. 한국 남자들이 일찍 귀가하지 않고 바깥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런 생각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

건축가 조성룡 선생이 10여 년 전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런 소중한 공간을 마련해 준 김 씨 부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김 씨가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차 한 통을 손에 들려줬다. 차탁 밑에 나름대로 ‘성의 표시’를 하고 돌아간다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하동=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3> 서울 이태원동 ‘레스토랑 서승호’… 고객 위한 단 하나의 테이블
하루 저녁 한 식탁만… 자유를 먹는 축제의 방


“6개월째 적자지만 손님들이 망하지 않게 할 거라고 믿습니다.” 서승호 씨는 자신만만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6개월째 적자지만 손님들이 망하지 않게 할 거라고 믿습니다.” 서승호 씨는 자신만만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는 것도 아니다. 끼니때 식당 앞에 손님이 늘어서는 것도 아니다. 요리사 서승호 씨(44)는 하루에 한 식탁만 차리는 게 요리사의 꿈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프랑스 식당 ‘레스토랑 서승호’에는 식탁이 하나다. 저녁 시간에만 단 한 팀이 앉을 수 있다. 한 사람일 때도, 열 사람일 때도 있다.

서 씨가 하루 한 테이블을 열망한 까닭은 “그 정도로 집중할 수 있고, 진심을 다할 수 있으니까”다. 그날의 손님을 위해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직접 시장을 본다. 이런저런 요리를 사전에 주문하는 손님도 있지만, 그를 아는 고객 대부분은 서 씨에게 모든 걸 맡긴다. 주문 없이 처음 방문한 손님들일 때는 첫 전채(前菜)요리를 내갈 때 이들에게 맞는 음식이 무엇일지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가로 1m, 세로 1.8m 크기의 식탁 하나가 들어선 15m²(약 4.5평) 남짓한 공간은 서 씨와 손님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나누는 자리다. 손님은 요리사가 그날의 제일 좋은 음식을 내오리라는 걸 믿는다. 요리사가 최상의 기술과 진심을 다해 준비하고 만들었음을 믿는다.

경주호텔학교를 나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요리사로 4년을 근무한 1996년 서 씨는 파리로 떠났다. 그곳의 유명 레스토랑 6곳에서 2년 동안 머물면서 그는 음식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열정과 기술, 마음가짐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손님이 예약을 하면 이후 더 확인을 하지 않는다. 예약을 한 날 제 시간에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2009년 찢어진 왼쪽 무릎 연골을 절제(切除)하는 수술을 받았다. 입원 기간에는 예약을 받지 않았지만 2개월 전 한 영국인이 한 예약은 취소할 수 없었다. 결국 목발을 짚고 링거를 맞으면서 요리를 했다. 1년에 한두 번 손님들이 약속을 어길 때가 있다. “그때는 쉬면 되지요.” 간명하다.

서 씨는 2006년, 나이 마흔에 잘나가던 ‘라미띠에’를 넘기고 나왔다. 예약은 언제나 3∼6개월 치가 잡혀 있어 아버지 제사에도 못 내려갈 만큼 숨 가쁘게 일했다. 돈도 많이 벌었고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요리를 정식으로 처음 배우던 25세 때의 ‘나이 40에 일단 멈춘다’는 생각을 실천했다. “마흔에는 새로운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2년 넘게 쉬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쉰 지 1년이 되자 주변의 많던 사람들이 절반 정도 멀어졌다. 2년째가 되자 나머지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 2년을 넘기자 비로소 ‘자기 사람’만 남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의 테이블 하나를 지켜주는 셈이다.

서 씨에게 식탁 하나는 그냥 하나가 아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예약 전화가 500여 통이 쇄도했다. 잠실체조경기장을 테이블로 다 채울 수 있는 정도다. “가슴이 벅차죠. 벅찬 만큼 이 식탁 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를 알았지요.” 다만 그 크리스마스에 예약한 손님은 오지 않았단다.

그의 식탁을 차지할 수 있는 비용은 1인 25만 원. 녹록지 않은 가격이다. 그렇다고 돈 있는 사람들만이 앉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2만 원씩 계를 부어 연말에 찾아온 대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청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소중한 시간을 위해 용돈을 모은 커플도 있다. 그의 요리에, 식탁 하나의 공간과 그 시간에, 값어치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서 씨가 2008년 이곳 문을 열면서 처음 초대한 손님은 라미띠에 시절부터 그를 응원해준 한 부부였다. 이후 매년 한두 번씩은 찾던 이들이 올해는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오지 못했다. 서 씨는 이들을 위해 이례적으로 20일 낮 시간을 비웠다. 자신을 믿어준 그들을 향한 작은 초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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