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를 정벌하고 아예 병합하려고 하자 맹자는 ‘연나라를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연나라 사람들은 2년 후 태자 平을 왕, 즉 昭王으로 삼고 제나라에 대항했다. 제나라 왕이 맹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자 제나라 대부 陳賈(진가)는 周公도 그 형제들의 반란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어 왕을 안심시키려 들었다.
周公은 주나라 文王의 아들로 武王의 아우인데 조카 成王을 도와 주나라의 國基(국기)를 다졌다. 管叔은 이름이 鮮(선)으로, 무왕의 아우이자 주공의 형이다. 무왕이 은나라를 이긴 후 紂王(주왕)을 죽이고는 주왕의 아들 武庚(무경)을 은 땅의 왕으로 세운 다음 관숙으로 하여금 그 아우인 蔡叔(채숙) 곽叔(곽숙)과 함께 그곳을 감독하게 했다. 그런데 무왕을 이어 즉위한 성왕이 어려서 주공이 攝政(섭정)을 하자, 관숙이 무경과 함께 배반했다. 주공은 그들을 토벌하여 죽였다.
使管叔監殷의 使는 사역동사, 관숙은 그 목적어, 監殷은 사역의 내용이다. 以殷畔은 은나라를 거점으로 삼아 반란했다는 말이다. 知而使之와 不知而使之는 가정(조전)의 절이다. 한문에서는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가정의 뜻을 담을 수 있다. 使之는 관숙에게 은나라를 감독시켰다는 말이다.
주자(주희)는 주공이 관숙을 임용한 것에 대해 ‘대단히 疏脫(소탈)했다’고 논했다. 兪棨(유계)는, 관숙이 은나라를 감독한 것은 무왕의 명령을 따른 것이어서 주공이 그 임무를 박탈할 수 없었으며 관숙도 才氣가 있었으므로 부득이 외직에 두어야 했다고 풀이했다. 일설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이 설에 따르면 무왕의 과실이 두드러지게 된다.
역대의 제왕들은 대개 형제의 난이나 측근의 발호를 미연에 막지 못했다. 특히 제왕의 外戚(외척)은 戚里之禍(척리지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무왕과 주공도 예측하지 못한 사실을 보면 형제나 친인척의 발호는 방지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단, 우리는 주공이 형제들을 토벌했던 그 과감한 조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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